초대석/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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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3.17 17:33 Updated

초대석/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초대석/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야크

유럽 아웃도어 시장의 유리천장 뚫은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

기업경영의 성공전략은 ‘배려’

 

 

아웃도어 시장의 원조인 유럽시장에서 블랙야크를 두고 이제, 바텀 피드(Bottom Feeder)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럽시장에 도전장을 낸지 불과 5-6년 만에 이뤄진 기적이다. 신의 영역으로 불리는 에베레스트 산을 인간이 등정했듯이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유럽시장에 당당히 세계최고브랜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지난 10일 서울 삼성동 소노펠리체 컨벤션 사파이어홀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주최‘CEO지혜산책’조찬강연회에서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은 <산과 경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아웃도어 브랜드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인 유럽시장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기까지 눈물겨웠던 과정을 설명했다. 바텀 피드. 수면위로 올라가면 자신보다 크고 강하면서 빠른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힐까봐 바다와 호수의 차가운 바닥에서 일생을 보내는 물고기를 말한다.

한국의 토종브랜드인 블랙야크는 올해 초 창립 44년 만에 유럽과 미국의 아웃도어 업체들의 콧대를 단방에 꺾는 기개를 보여줬다. 지난 1월 26일 뮌헨 ISPO에서 글로벌부문 황금상과 제품상 등 ‘11관왕’을 휩쓸면서 부터다. 이 중 부문별 최고상인 황금상만 총 8개(아시아 부문 4개, 글로벌 부문 4개)를 거머쥐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500여 개 업체가 참가한 이번 ISPO에서 아웃도어 황금상은 글로벌·아시아 부문상을 합쳐 총 30개로, 한 기업이 황금상 8개를 수상한 것은 ISPO가 생긴 이래 46년 만에 처음이다. 블랙야크가 미국·유럽 업체들이 점령한 ISPO에서 어렵사리 전시부스를 마련한 지 꼬박 5년 만에 이룬 쾌거다. 세계 아웃도어 시장은 미국이 13조원 정도이지만 유럽과 한국은 각각 9조원과 7조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유럽의 아웃도어 역사는 유럽이 130년, 미국과 한국은 각각 70년과 50년 정도다. 강 회장의 뮌헨 ISPO입성은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의 역사였다. 강 회장은 90년대 말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1998년 중국시장에 진출한데 이어 2009년쯤 한국인 최초로 유럽시장에 눈을 돌리면서 스포츠 아웃도어올림픽이라고 불리는 ISPO 참가를 결심했다. 이를 위해 우선 사무국에 수차례 연락을 하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결국 강 회장이 이듬해 뮌헨 ISPO 현장 사무국에 직접 찾아가 전시부스를 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하지만 그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비웃음뿐이었다. 이런 ISPO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강 회장은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행사에서도 부스를 철수하는 강공을 펼쳤다. 강 회장의 이런 완고한 결단에 ISPO 사무국은 2012년에 결국 C급 전시공간을 내줬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당시 A급과 B급 전시장은 유럽과 미국이 독차지 했다. 인테리어도 멋지게 장식한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는 늘 C급으로 배정돼 유럽과 미국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규모도 A·B급이나 비전홀은 대략 90㎡규모 이상이지만 C급은 닭장 수준이다. 그야말로 ISPO전시장도 아시아 기업에게는 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이었다. 그러나 물러설 강 회장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B급전시장을 얻어 전시 마지막 날, 부스장 앞에서 강남스타일로 깜짝 이벤트를 진행했다. 부스가 망가질 정도로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때 주문을 받은 옷이 서구인의 체형에 맞지 않아 반품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간의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강 회장은 “눈물이 났다. 유럽시장에 도전을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에베르스트 산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수없이 사투를 벌이던 때가 생각났다”고 밝혔다.

 

세계 자본가들로부터 투자의사 봇물

유럽시장에 재 도전장을 내 밀었다. 유럽스타일의 칼라와 체형, 소재, 스펙은 물론 제품개발과 벤더사 지정, 디자인 등을 거쳐 필드테스트까지는 꼬박 3년이 필요했다. 이 기간 동안 ISPO에는 샘플만 내보냈다. 대신 강 회장은 “블랙야트다운 제품을 만들자”는 각오로 꼬박 4년간 눈물을 머금고 도전했다“며 ”필드테스트를 위해 스키를 타다가 운명을 달리한 대원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유럽시장 진출에 대한 그의 집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난 1월 뮌헨 ISPO 이후 강 회장은 물론 블랙야크에 대한 세계 아웃도어 업체들의 대접도 크게 달라졌다.

강 회장은 “아시아 업체는 물론 블랙야크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영국 등 글로벌 파이낸싱 업체들이 수천억원의 돈을 들고 블랙야크에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물론, 굴지의 언론으로부터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이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8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블랙야크는 2020년에는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1위를 하겠다는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아시아, 유럽, 북미 등 3개시장을 축으로 소위 ‘트라이앵글’전략을 내세웠다. 1998년 중국에 진출한 블랙야크는 올해 연말까지 500개 매장을 낼 방침이다. 중국시장 진출도 그의 뚝심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중국진출 3개월 만에 물주머니 한 개 판 것이 전부였다. 모두가 무모하다는 비아냥 뿐이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강 회장은 이때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생각하면서 도전을 선택했다“며 ”중국의 자존심인 만리장성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무릎을 쳤다“고 회고했다. 블랙야크가 만리장성을 지키겠다는 자연보호 캠페인을 하겠다는 것. 하지만 중국인들은 “왜 너가 나서느냐. 만리장성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평소 중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지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온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 회장은 각계각층의 중국인들을 찾아다니며 친분을 쌓는 등 끈질기게 파고 들었다. 이런 집념을 통해 “중국의 등산협회와 함께 캠페인을 하자”는 제안을 해 극적으로 성사시켰다. “블랙야크도 만리장성을 지킨다”는 광고카피가고 탄생한 배경이다. 이후 블랙야크는 500개의 쓰레기통을 만리장성 입구에 비치하고 매년 마라톤대회를 여는 등 브랜드이미지 구축에 앞장선 결과, 현재 중국에서 아웃도어 분야 브랜드파워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어 2012년에는 네팔에 블랙야크 1호점을 냈다. 전 세계 산악인들이 몰려드는 네팔에 광고차원의 선택이었다. 글로벌사업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또한 블랙야크는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업체를 인수해 블랙야크 제품을 수출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강 회장은 “4년 전 재생원단과 자연소재를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나우’를 인수했다”며 “이번 ISPO이후 회사의 브랜드가 미국인들에게도 각인돼 올해부터 열매가 맺을 것이다”고 밝혔다.

 

1950,2750,8848

강 회장은 이날 강의를 시작하면서 1950, 2750, 8848이라는 숫자로 제시하고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한라산과 백두산, 그리고 에베레스트 산 높이를 말한다. 강 회장은 제주도 출신이다. 한라산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 민족의 성지라 불리는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에베레스트까지 오른 자신의 삶을 어쩌면 ‘운명’이 아닌가 하고 반문했다. 특히 히말라야에서 서식하는 야크는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은인이며, 성공한 경영자로 이끌어주는 나침반 같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강 회장은 대원 3명과 함께 에베레스트 산을 하산하다가 대열에서 이탈했다. 체력은 바닥났고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감는 순간이 바로 죽음으로 이어짐은 불문가지. 희미해진 눈동자에 동물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살았구나”. 동물이 산다는 것은 인간도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본 야크가 바로 이 회사의 브랜드가 됐다. 한마디로 야크가 사람도 살리고 돈도 벌어주는 은인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그는 1983년 몽블랑(4,807m)등정을 시작으로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27m),세계7대륙 최고봉 원정대 엘부르즈(5,642m) 원정대 단장을 비롯해 안나푸르나(8,091),칸첸중가(8,586),서울티벳 합동 에베레스트(8,848)원정대 대장으로 맹활약을 펼친 최정상급 산악인이자 탐험가이며 경영자다. 체육훈장 백마장과 대한민국 체육상을 수상한 배경이다. 그는 NASA(미 항공우주국)의 전망을 인용해 “오는 2030년이면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자신의 꿈을 피력했다.

강 회장은 “앞으로 화성에도 어쩌면 에베레스트 보다 높은 산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더 높고 더 넓은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 꿈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산악인이자 경영자로서 “지금까지 5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을 산을 모두 올랐지만 산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앞으로 50년 더 산을 다니면 알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다만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에베레스트를 찾아가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때를 생각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며 “수백만번의 기도와 성찰을 통해 경영의 답을 찾는다”고 말했다. 소요기간은 대략 60여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인간 한계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순화시켜 경영에 접목한다는 그의 설명이다.

“경영일선은 고산등반과 같다. 제약된 공간속에서 어디 한 곳 편히 발붙이고 쉴 수 있는 곳이 없다. 지친 몸과 버티고 있는 정신의 임계점을 넘나드는 시험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억세게 움켜쥔 까닭에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주저앉지 말라”

강 회장의 저서 <정상은 내 가슴에>(세상의 아침)에 나온 대목이다. 53년 전 인간이 도저히 갈 수 없는, 신(神)만이 갈 수 있다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세계 최초로 밟은 사람이 있다. 바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다. 당시 기자는 힐러리 경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는 “어떻게 산에 올랐느냐”와 “셀파가 먼저냐, 아니면 힐러리가 먼저냐”였다. 힐러리는 첫 번째 질문에는 “두 다리로 한발 한발 걸어서 다녀왔으며 두 번째 질문에는 셀파와 손잡고 함께 정상에 올랐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한 강 회장의 생각은 이렇다.

“힐러리 경은 대략 3개월 동안 에베레스트를 오르면서 기다림과 끈기, 그리고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 정상에 올랐을 것입니다. 변덕스러운 날씨 등 자연과 싸워서는 결코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모든 고난의 과정을 순화시키는 과정에서 이룬 성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힐러리는 셀파와 함께 손잡고 올랐다고 했는데, 어떻게 비좁은 바위와 빙벽 틈을 올랐겠습니까. 함께 손잡고 올랐다는 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가정과 직장에서 상대에게 어떤 배려를 하고 있습니까. 저 역시 배려에 대해 잘못하고 있지만 경영의 성공은 배려에서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 강 회장은 스탠리피셔 미 연준 부의장의 말을 인용해 창업국가의 비결을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은 땅이 좁고, 인구가 적으며, 자원이 부족하다”며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경제학을 공부시켜 창업정신을 이끌어 낸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세계인구의 0.2%에 불과한 유태인이 노벨상은 물론 경제학상, 의학상, 화학상 등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재계에서 차지하는 유태인의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40대 재벌의 40%와 400대 기업 CEO 23%가 유태인이라는 설명이다.

 

정의선

사진/ 여성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등정한 산악인 오은선(블랙야크, 50)대장, 블랙야크 임직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제구호기관인 W재단 구호팀으로 이루어진 블랙야크 네팔지원단이 5월 11일 출국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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