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경수 (사)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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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5.24 21:48 Updated

클릭/ 이경수 (사)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부총재

클릭/ 이경수 (사)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부총재

 

이경수 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부총재

새마을 금고, 농촌살리는 사회안전망 역할 다해야

 

“새마을금고의 부패는 심각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상호부조를 통한 농어촌 공동체부활의 정신보다 오직 돈놀이에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어요.”

지난 4월 24일 전국 고창에서 만난 이경수 사단법인 젊은농촌살리기운동본부 부총재의 지적이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이경수 이사의 외침은 “새마을금고가 농촌을 살리고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를 위해 “새마을금고는 현재 55세 이상의 귀농·귀촌하는 세대들에게 잉여금에서 일부를 5년 거치 장기 저리로 지원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새마을금고 설립의 본래 취지가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부상조의 정신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현재 정부의 정책은 55세 미만의 귀농귀촌세대들에게만 정착지원금을 주고 있다. 이에 55세 이상의 은퇴인력은 정부의 정책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귀농·귀촌하는 세대들의 정착지원금을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명예직으로 봉사하고 대신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새마을금고의 구조조정을 통해 5,000여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 최근 전국의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마을금고의 적폐를 염두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지난 1월 동아일보는 ‘사실상 종신제 ‘神의 금고지기’들이라는 제목으로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30년 이상 재임이 가능하고 1억원이 넘는 연봉에다 인사 및 운영에 대한 전권을 보유, 가히 ‘신(神)의 직업’이라고 불릴 만한 자리가 전국에 1,340개에 이른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도 “새마을금고중앙회장 연봉이 8억원에 육박한다”며 “새마을금고 임원들이 받는 봉급이 국민정서에 상당히 동떨어진 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된바 있다. 새마을금고는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에 의해서 발족된 농촌신용조합을 그 효시로 하고 있다. 이 부총재는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한 뒤 1976년 한국해외개발공사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민간 외교관 신분으로 30여년간 사우디아라비아·토론토·이티오피아 등에서 근무한 뒤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이사로 은퇴를 했다. 이후 그의 고향인 고창으로 귀촌, 전북복분자사업단장과 전국농식품크러스터연합회장을 거쳐 현재 (사)젊은농촌살리기 운동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또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든 새마을운동 본부를 전북 새만금으로 이전해 새마을운동의 메카로 만들어 세계 농업의 중심이 되도록 육성해야 한다”며 “전북에는 농업진흥청,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익산농식품클러스터 농생명바이어 클러스터, 종자개량연구소 등 각종 농업관련 기관과 국민연금기금금운용본부가 있어 농업과 금융업의 허브로 도약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로 새마을운동 본부의 이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즉 새마을운동 본부의 새마을연수원에서 ‘마을공동체지도자(Community leader)를 양성하고 농업과 세계동양을 끊임없이 교육을 시키는 한국농업의 산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경남 함양군의 사례를 제시했다. 경남 함양군은 억대농가 30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전개, 현재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은 바로 경상북도 농업아카데미를 수년간 시행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여수엑스포장에 ‘한중일’식품 전시장 제안

이경수 부총재는 고창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게 느낄 정도로 애착이 강했다.

“세계 4대 농민혁명가운데 하나인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가 바로 고창이며 특히 공음면은 역사의 중심지입니다. 아직까지 동학혁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지만 동학의 정신을 이어받아 제2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농민혁명이 고창에서 다시 불길을 지펴 한국농업의 메카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제가 고창에 내려와 틈틈이 동학혁명에 대한 자료수집 등 유적지 발굴에도 힘을 보태고 있어요.” 아울러 그는 국민행복지수 1위이자 세계적인 농업국가로 변신한 덴마크의 두 지도자인 엔리코 달가스 중령과 니콜라이 그룬트비 목사를 비유하며, 귀촌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영농전문가나 대학교수가 아니지만, 농업발전을 위해 지식보다는 땀과 열정을 통해 기적을 일으킨 평범한 시민이다”며 자신의 길을 제시했다. 그룬투비 목사는 농민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농민들의 마음을 갈아엎어 깨어있는 농민으로 거듭나게 했고, 달가스 중령은 자갈밭 산지를 개간하고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어 덴마크를 세계적인 농업국가로 변화시킨 주인공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이 부총재는 “전남 여수는 빼어난 자연환경과 풍부한 먹거리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잠재력이 풍부하다”며 엑스포 부지에 한·중·일 식품전시관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또한 해양스포츠를 비롯한 레저 및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각종 문화콘텐츠를 합치면 지방경쟁력을 살리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

1894년 1월 고부민란 이후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에서 농민군 가담자를 가혹하게 다루자 전봉준은 일단 무리들을 해산하여 3월 13일 부하 50여 명만을 거느리고 무장으로 내려온다. 당시 호남의 최대 세력을 떨치던 무장의 손화중 등과 힘을 합하여 세상을 바로잡고 왜놈을 물리친다는 것을 요체로 1894년 3월 20일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에서 포고문을 발포하고 행동지침을 포괄하는 4대 명의를 발표하였다. 전봉준 등 지도부가 밝힌 거사의 대의명분은 이때 발표된 「무장창의문」에 잘 나타나있다. 이 마을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큰 팽나무인 당산나무가 있어 당산마을이라 불렀고,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구수마을보다는 당산마을이라는 이름을 즐겨 부르고 있다. 무장기포는 지역봉기인 민란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봉기로 출발한 시발점으로써 동학농민혁명사에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무장기포지는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공음면 주민들이 1백여만 원을 모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589-3번지외 2필지 478㎡, 고창군에서 매입한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590번지 일대를 포함하여 9천여㎡에 1억 2,000만 원으로 2002년 조형물 1식을 설치하고 주차장, 화장실신축, 조경사업 등 5억원을 투자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였다. 2009년 4월 25일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 제115주년을 맞아 소나무 3그루를 식재하였다. 소나무는 고창군목(郡木)으로 변함없이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하며 꿋꿋한 절개의 의미를 나타내며 미래지향적인 군민임을 상징한다. 소나무 3그루는 1894년 3월, 동학농민혁명당시 고창, 무장, 흥덕 3현,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총대장 전봉준(중앙), 총관령 김개남(좌), 총관령 손화중(우)을 상징한다. 이날 기념식수는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고 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난국 해소를 기원하는 매듭풀기, 전북 고창 당촌, 부안 백산, 정읍예산, 경북 상주동학교당, 경주 최시형교주 출생지, 경남 하동 고성산성, 충북 보은 북실전투지, 충남 공주 우금터, 강원도 홍천 서석, 서울 경복궁 등 동학농민혁명유적지와 대전 유성 월드컵경기장, 대구 팔공산, 울산 무룡산, 부산 동래구, 광주 전남도청 터 등 20여 개소의 흙을 합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글 : 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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