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일곱 명의 열쇠지기가 지켜낸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특별전…. 9월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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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9.27 15:52

문화가산책/  일곱 명의 열쇠지기가 지켜낸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특별전….  9월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서 개최

문화가산책/‘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특별전

 

일곱 명의 열쇠지기가 지켜낸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특별전

9월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서 개최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 특별전이 지난 7월5일부터 9월4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놓쳤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9월 27부터 11월 27일까지 3개월동안 국립경주박물관에서도 전시되기 때문이다. 이번 특별전은 2006년 파리의 기메박물관을 시작으로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 등 지금까지 11개국 18번째 기관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한국은 개최 12번째 국가로 특히 올해는 순회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영남 자유기고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이날 제각각 무리를 지은 학생들과 해설을 하는 인솔자를 빼면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니 부지런한 사람들은 더위가 오기 전에 이미 관람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옆에서 들리는 말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신없다.”고 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는 법이다. 혼란과 위기 속에서 일곱 명의 열쇠지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유물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 펼쳐져 있다. 인류의 역사로 남은 귀중한 황금빛 문화유산이다.1919년 독립한 아프가니스탄은 프랑스, 소련 등 각국 고고학계와 협력하여 많은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그중 소련의 ‘빅토르 사리아니디(Vikor Sarianidi)’ 발굴 팀의 ‘틸리야 테페’ 발견(1978년)은 가장 중요한 성과로 손꼽힌다고 한다. 작은 붓으로 심혈을 기울여 발굴하는 사진을 보니 발굴 팀에게 경외심이 든다. 하지만 무덤 속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발굴을 천인공노할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 죽어서 편히 쉬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수치스러움을 넘어 끝내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속속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1979년 이후 전쟁과 내분으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위기에 처하자, 박물관 직원들은 문화재 보존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들은 대통령궁 안의 중앙은행 금고에 황금 문화재 등 중요 소장품을 보관했다. 이 금고는 열쇠 7개를 모두 넣고 돌려야만 열리는 구조였다. 일곱 명의 열쇠지기들은 각각 한 개씩 금고 열쇠를 가지고 비밀리에 헤어져 이 열쇠를 지켜냈다. 그리하여 2004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성립되어 안정을 찾게 되자 흩어졌던 열쇠지기 일곱 명이 모두 모여 금고를 열고 보물을 공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귀중한 보물들은 이렇게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남아 세상을 유람하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귀중한 문화유산들도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열쇠지기들이 지켜낸 황금문화는 온전히 살아남은 것이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과 함께 개최한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 특별전은 발굴과 보존, 전시를 위한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일곱 명의 열쇠지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 한 명이라도 비밀을 지키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개개인의 힘은 분명 나약했을 것이나 사명감으로 굳건하게 인류의 보물을 지켜냈다.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 입구에는 “그 문화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글이 걸려있다고 한다. 나라의 흥망이 문화에 있다는 말이 아닌가. 뒤집어놓고 보니 다소 과한 것 같기는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닌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 특별전을 보며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네 곳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시기별 흐름에 따라 들여다보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아프가니스탄박물관의 소장품 231점을 중심으로 기원전 2000 년경의 청동기 유적에서부터 기원후 1~3세기의 도시 유적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 지형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유럽, 중국, 인도를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수천 년 전부터 교역이 활발하여 ‘청금석의 길(lapis lazuli road)’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질 좋은 청금석 교역이 특히 유명하다. 아프가니스탄의 고대 문화는 외래적 요소가 토착 요소와 융합하여 탄생하였고, 우리나라는 물론 주변 지역의 문화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네 곳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각 유적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시기별 흐름에 따라 선보인다.

 

기원전22세기~19세기경/ 금/ 테페 플롤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제공

<기하학 무늬 잔>기원전22세기~19세기경/ 금/ 테페 플롤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제공

제1부 테페 푸롤(TEPE FULLOL)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에 위치한 테페 푸롤은 기원전 2000 년 전후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추정된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비옥한 경작지와 청금석 교역지로 일찍부터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던 지역이다. 이곳의 문화재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인더스 문명과의 본격적인 교류를 해왔던 곳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기하학 무늬 잔에는 섬세한 세공이 되어 있고 잔의 조각들도 따로 전시되어 있다. 한때는 향기 좋은 술을 담았을 황금잔이 깨어져 구겨져버린 조각들이다. 어쩌면 저 황금잔으로 마시는 한잔 술에 인생을 논하기도 하고, 시를 읊으며 삶을 찬미했을지도 모른다. 순간 쓸쓸해지며 생이 무상해진다.

 

기원전2세기/ 석재/ 아이하눔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헤르메스기둥>기원전2세기/ 석재/ 아이하눔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2부 아이 하눔(AI KHANUM)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주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후, 원정로 곳곳에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세워졌다. 아이 하눔은 달의 여인을 뜻한다.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중앙아시아에 세워진 도시 유적 아이 하눔을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신전, 궁전, 경기장, 도서관, 반원형 극장 등 그리스 도시들의 특징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문자나 신화의 내용도 발견됐다. 또한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서아시아의 문화 흔적에서 이 지역이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혼합된 헬레니즘 문화의 주요 근거지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1세기/ 금/ 틸리야 테페 6호분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금관> 1세기/ 금/ 틸리야 테페 6호분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제3부 틸리야 테페(TILLYA TEPE)

틸리야 테페 유적은 ‘황금의 언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발굴 당시 이집트 ‘투탕카멘’ 발굴에 버금가는 발견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유목민의 왕족 혹은 사제(司祭)로 추정되는 무덤6기다. 가히 ‘박트리아의 황금’이라 할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부장품들은 제작 기술뿐만 아니라 신분과 위상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미술양식이다. 관람 도중에 금세공이 얼마나 정교하고 얇고 섬세한지 만약 냉방시설이 없었다면 이 훌륭한 황금 문화재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금이야, 옥이야’ 한다더니 이 황금유물은 그만큼 소중하게 보존할 수밖에 없겠다. 황금 숫양 조각상은 틸리아 테페 4호분에서 출토됐다. 높이 5㎝ 가량의 작은 크기지만 조각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커다란 뿔 아래로 몸 전체 균형감이 뛰어나고 근육은 생동감이 넘친다. 몸체 가죽과 주름 표현은 섬세하다. 숫양이나 수사슴은 뿔이 떨어져도 다시 솟아나기 때문에 영원성과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라 금관에서도 숫양·수사슴의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다. 6호 묘에서는 신라의 금관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금관이 발견되어 매우 의미가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화려한 금관을 본 많은 관람객들은 신라 금관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금관이 아프가니스탄 금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이 문화유산은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스키타이-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박트리아 유목민의 광범한 교역 활동과 국제성을 보여준다.

1세기/ 상아/ 베그람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제공

<미카라 위에 서 있는 여신>1세기/ 상아/ 베그람 출토.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제공

제4부 베그람(BEGRAM)

베그람은 쿠샨 왕조(기원전 1세기 ~ 기원후 3세기)의 여름수도로서 번영했던 도시다. 베그람 궁전 터에서는 유리기(琉璃器), 청동기, 석고품(石膏品), 칠기(漆器)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출토됐다. 이들은 각각 인도, 로마, 그리스, 이집트, 중국 등의 영향을 보여준다. 실크로드와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던 도시 베그람에서 당시 활발했던 동서 문물 교류의 흔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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