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상석 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 추진하는 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장보고정신으로 글로벌 인재육성 이바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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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4.03 17:41

■인터뷰/ 황상석 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 추진하는 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장보고정신으로 글로벌 인재육성 이바지하겠다

인터뷰/ 황상석 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 추진하는 장보고글로벌재단 사무총장

장보고정신으로 글로벌 인재육성 이바지하겠다

 

오는 4월 14일 청해진이 있던 완도에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이 들어선다. 장보고글로벌재단이 완도군과 함께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역사관’ 추진사업의 1단계 사업이다. 명예의 전당에는 장보고한상 어워드 수상자들의 성공스토리가 전시되고 미래의 장보고를 육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예정이다. 장보고글로벌재단 황상석 사무총장은 오늘날 한국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장보고한상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지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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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청해진 대사 또는 한상이라는 개념은 잘 알고 있겠지만 ‘장보고한상’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기존의 장보고대사라는 용어 대신 지금 시대에는 장보고한상 개념을 정립시켜야 합니다.”

황상석 사무총장은 장보고한상 개념이 7세기 이후와 19세기 이후 한민족의 해외이주와 관련이 있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7세기 중엽부터 9세기까지 한민족의 일원인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인들의 상당수가 당과 일본으로 건너가서 형성된 것이 신라인 디아스포라인데 이들의 핵심이 바로 장보고상단이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근대의 디아스포라 및 현재 한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황 사무총장은 말한다.

“19세기 중엽부터 한인들이 연해주 및 간도, 만주 등지로 이주하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즉 재외동포가 형성됐습니다. 이들의 주축이 재외동포경제인, 즉 한상들입니다. 장보고와 한상을 하나로 묶은 신조어가 ‘장보고한상’인데 2016년 11월 2일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신청했습니다.”

황 총장은 20년간 장보고의 글로벌 정신과 성공 비결을 분석해왔고, 신라인 디아스포라 형성과 장보고 무역상단을 중심으로 한 재외 신라인 경제공동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장보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의 관심은 장보고를 단지 역사 속 인물로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 세계로 진출하는 한민족들의 귀감이자 표상으로 세우는 것이다.

“9세기에 활동했던 장보고의 삶과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오늘날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등대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경제의 취약점을 장보고한테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특화된 전문성 강화해 선정 예정인 2017 장보고한상 어워드

2012년부터 활동해 왔던 (사)장보고CEO포럼과 (사)장보고기념사업회를 통합해 지난해 5월 (사)장보고글로벌재단이 출범했다. 김대중 정부시절 농림부장관을 지냈던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해수부장관을 지냈던 오거돈 동명대 총장이 고문을 맡았다.

장보고글로벌재단은 한상의 업적과 동로를 격려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 어워드’를 제정했고 각계의 추천을 받아 지난해 10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제1회 시상식을 가졌다.

중국 이우시 한국상회 회장이자 차스무역을 운영하고 있는 차봉규 대표가 국회의장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 에이산그룹을 이끌고 있는 장영식 대표가 해수부장관상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유비바이오를 운영하고 있는 이연수 대표가 산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공모기일이 50일이 채 안 될 정도로 짧았고 대상 후보군에 속한 조선족 기업가가 사드문제로 신청을 철회하면서 아쉽게도 대상인 한상어워드는 수상을 하지 못했다. 2회째를 맞는 올해는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차별화된 선정기준으로 보다 권위있는 수상식이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및 문화영토를 확장하는데 공로가 큰 한상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너무 포괄적으로 공모하다 보니 지원을 꺼렸던 것 같아요. 올해는 수상부문을 늘려서 보다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특화해 수상할 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외교부장관상에는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한상을, 산자부장관상에는 경제영토를 넓히는데 기여가 큰 한상을, 문체부장관상에는 문화와 체육 영토를 넓힌 한상을, 해수부장관상에는 도전과 개척정신을 함양시킨 한상을 대상으로 수상할 계획이다. 단 최우수상과 대상은 지난해와 같다.

 

글로벌기업가 정신 함양과 글로벌 인재양성에 큰 비중

재단이 구상하고 있는 가장 큰 사업은 완도에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을 만드는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서는 수상자들의 성공스토리를 전시하고 성공스토리와 관련한 도서 및 만화 등을 출판해 널리 홍보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며 나아가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할 예정이다. 그 1단계로 올해 4월 14일 장보고기념관 내에 장보고한상 기획전시관을 구성한다. 2단계 사업으로는 현 완도관광정보센터를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리모델링해 2019년부터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 건물로 운영할 예정이다.

3단계로는 2015년 이후 독자적인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을 건립할 계획이다. 2017년 이후 재외동포재단이 제주 서귀포로 이전함에 따라 제주와 완도를 잇는 새로운 관광루트를 마련해 명예의 전당을 ‘한상의 메카’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4단계로는 2035년 이후 신라인 디아스포라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잇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역사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사업의 각 단계별로 규모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글로벌 기업가 정신 함양과 이를 통한 글로벌 인재육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의 존립 이유이기도 하다.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어워드 수상자의 성공스토리를 전시해 이들의 기업가 정신과 성공모델, 업적들을 후세에 전해주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완도를 방문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장보고기념관에서 1,200여년 전에 활약했던 장보고 대사의 기상과 웅지를 체험하고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에서 21세기 장보고로 인증을 받은 어워드 수상자의 성공스토리를 관람하면서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자극을 주고자 합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지주와 안식처 역할할 것

해외에 있는 많은 차세대 청소년들을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과 연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도 추진되고 있다.

“재외동포 차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 즉 뿌리의식을 확립시켜 주는 것입니다. 거주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주류민족들의 질시와 차별을 받으며 소수민족으로서의 비애를 경험하는데 이럴 때 많은 차세대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됩니다.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재외동포재단이 제주도로 이전하면 많은 재외동포들이 제주도를 찾게 될 것인데, 제주와 완도는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지척의 거리라서 접근성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봅니다.”

일각에서는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이 전남 완도라는 지역명소 이미지로 국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황 사무총장은 지역 이미지를 탈피해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워드 선정자의 대상과 폭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어워드 수장자로 선정된다면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일약 관광명소로 부각될 수 있습니다. 우선 어워드 홍보를 180개국에 흩어져 있는 720만 재외동포들에게 알리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들이 이주 및 정착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스토리를 전시하는 곳이라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고 확신합니다. 재외동포들의 새로운 안식처가 될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리겠습니다.”

 

1979년 이종상이 그린 장보고 국가표준영정.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1979년 이종상이 그린 장보고 국가표준영정.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He is…해상왕 장보고

문무를 겸비한 해상 경제‧문화의 프론티어

신라 흥덕왕 때 인물로 <삼국유사>에는 ‘궁파()’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당나라로 건너간 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친구인 정년()과 함께 일찌기 당의 서주로 건너가 무령군 소장을 지냈다. 장보고와 정년은 용맹해서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 당할 자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장보고는 당에서 돌아온 828년 흥덕왕에게 당의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략해 노비로 사고파는 일이 많다고 보고하고 청해(현재의 완도)에 진영을 설치할 것을 건의한다. 흥덕왕의 허락으로 1만명의 병사를 얻고 청해진을 설치한 후 대사()로 등극한다. 이후 해적을 소탕하고 서남부 해상권을 장악하고 당에 견당매물사와 교관선을 파견했다. 일본에는 회역사를 보내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836년 흥덕왕이 죽자 흥덕왕의 사촌인 김균정과 조카 김제륭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벌어져 김균정이 죽고 김제륭이 희강왕으로 등극한다. 김균정의 아들인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피신해 장보고에게 의탁한다. 2년 후인 838년 상대등 김명은 희강왕을 죽이고 민애왕으로 즉위한다. 그러자 김양 등이 청해진으로 김우징을 찾아와 군사를 모의한다. 839년 장보고는 김우징, 김양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왕으로 세운다. 그가 곧 신무왕인데 즉위 3개월 만에 죽고만다. 신무왕에게 감의군사를 하사받은 장보고는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으로부터 진해장군을 임명받는다. 845년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둘째왕비로 들여보내려 했다. 그러나 중앙의 귀족들이 섬사람의 딸이라고 반대하자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846년 문성왕은 자객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살해하고 청해진을 없애버렸다. <삼국유사>에서는 신무왕이 장보고에게 자신을 도와주면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속했다가 어기자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장보고글로벌재단 황상석 박사의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 왜 설립해야 하나?’ 논문에 따르면 당으로 건너간 장보고 대사는 재당신라인과 재일신라인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한중일 경제권을 형성한 인물이다. 그 저력을 바탕으로 청해진을 설치한 지 불과 14년 만에 한중일 해상무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장보고는 당과 일본에 견당매물사와 대일회역사 등 대규모 상단을 파견하고 물류 및 유통, 국제무역 등을 직접 운영했다. 장보고 대사는 당 및 일본 당국과 통상교섭을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824년 장보고가 일본을 직접 방문해 지쿠첸국 태수와 만났다는 사실이 엔닌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당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던 엔닌 스님은 기행문과 일기 등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장보고가 일본 관인들과 교섭하여 교역을 조율했다고 그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볼 때 장보고는 당과 일본 등지에 거주하던 신라인 디아스포라를 하나로 묶어 한중일 해상무역을 주도했을 뿐만아니라 동서교역에도 동참하는 등 신라경제 및 문화영토를 해외로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겼던 위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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