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홍미식, 낯선 여행에 취하다 …. 중세, 그 향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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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6.01 11:57

■라이프/홍미식, 낯선 여행에 취하다  …. 중세, 그 향기를 만나다

라이프/홍미식, 낯선 여행에 취하다

중세, 그 향기를 만나다

홍미식 자유기고가

 

역마살이었을까, 어릴 적 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였는지 대학생 때는 많은 여행을 했다. 방학 때면 집에 있을 새 없이 이어지는 여행으로 엄마에게 혼나기도 했다. 하긴 그랬으니 40년 전 그 시절엔 여행지로는 엄두도 못 냈던, 오지나 다름없던 울릉도로 겁도 없이 덜컥 나섰던 게 아니었던가? 예상에 없던 폭풍우를 만나 발이 묶이는 바람에 개고생했던 아련한 추억도 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은 후로 개인적인 여행은 기회가 없었다. 잠시 스리랑카에 있을 때 싱가포르, 몰디브 등 동남아 국가와 가족끼리 떠나는 여름휴가가 내 여행의 전부였다. 세월이 지나며 아이들은 성장했고 나는 어느새 장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열심히 산 나에게 한 열흘쯤 선물을 주어도 좋을 때,

‘자, 이제 떠나자.’

2017년 3월 22일, 오전 10시, 나는 인천국제공항에 섰다. 요즘 대세인 동유럽 발칸반도 5개국 여행을 위하여… 아, 얼마만인가? 해외여행, 친구들과의 여행이. 앞으로 9일 동안 나는 가족을 접어두고, 어린이집 아기들을 놓아두고, 일상을 제쳐두고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리라. 친구들을 만나고 탑승수속을 거쳐 1시 10분,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했다. 약 9시간 45분을 날아 도착한 모스크바 공항에서 세 시간 반을 기다려 환승, 다시 세 시간 후 첫 목적지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새 밤, 이렇게 이번 여행의 첫 밤을 맞이했다. 음식과 잠에 민감한 나는 이제 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숙제였다. 일행이 세 명이라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셋이 함께 지내는 것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나는 잠자리가 바뀐 탓에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도 턱없이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3월 23일, 아침 식사는 소시지, 햄, 베이컨과 시리얼, 삶은 계란과 빵, 야채샐러드 등 생각보다 성찬이었다. 아침식사를 중시하는 한국인을 위한 특별식이란다. 덕분에 거부감이 들지 않고 편안했다. 이번 여행의 첫 일정으로 비엔나의 상징인 ‘쉔브룬 궁전’을 관람했다. 비엔나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왕가의 여름 주거지였던 이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전성기를 누렸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엄과 품격이 느껴졌다.

 

슈테판 대성당

슈테판 대성당

슈테판 대성당에서의 벅찬 감동

다음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사원인 ‘슈테판 대성당’을 방문했다. 비엔나의 혼이며 상징인 이 성당의 이름은 그리스도교 최초 순교자 슈테판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137미터의 첨탑, 25만 개의 벽돌, 65년의 공사 기간이 말해주듯 규모나 건축 양식이 가히 대성당이란 이름에 손색이 없었다. 천재 피아니스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화려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수식어 외에, 이번 여행을 통하여 이 슈테판 성당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성당에 들어서 자리에 앉는 순간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며 울음이 터져 나와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흐느꼈다. 지금 그 자리에 앉아있음에 감사하며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끓어오른 이 감정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느닷없이 찾아온, 자주 느낄 수 없는, 흔치않은 벅찬 감격이었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슈테판 광장에 서니 아름다운 선율의 모차르트 피아노곡을 연습하던 때가 떠올랐다. 음악은 좋아했지만 음악성은 따라주지 않았던 내게, 열심히 연습해도 예쁜 소리를 허락하지 않던 피아노곡은 그 시절 나의 사랑이며 아픔이었고, 그 경외의 대상인 쇼팽, 슈베르트, 베토벤… 그리고 모차르트가 거기 있었다. 잠시의 추억을 접어두고 네오고딕 양식의 시청사와 국립오페라 극장과 슈테판 성당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본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이 ‘게른트너 거리’ 자체가 예술이다. 이어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벨베데레 궁전’을 방문했다. 금박이 화려한 듯 다소 난해한 클림트의 키스는 약 2조원의 가치가 있다는데 그래서인지 전시된 원작 앞에서가 아닌 로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배치해 놓았다. 정원은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웠다. 다만 자연의 정원을 제일로 치는 내 정서상 인공적인 것에 대한 약간의 거리감은, 물이 부족한 유럽의 지리적 특성상 물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꾸미는 아름다운 정원이 유럽 정원의 진수라는 말이 생각나 받아들였다.

예술의 도시 ‘비엔나’의 짧은 일정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유럽의 파리라 불리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새 밤, 국립미술관. 역사박물관과 드라마 아이리스로 알려진 부다 왕궁의 야경이 눈길을 끈다. 또 역대 황제들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열리며 헝가리의 영욕을 함께 했던 마차시 성당,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세워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이 부다페스트 관광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프랑스 파리. 체코 프라하와 함께 유럽의 3대 야경이란 이름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야경의 여운을 안고 이틀째 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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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광장에서 두 팔을 활짝 펴고

3월 24일. 아침식사 후 부다페스트를 관광했다. 낮에 본 부다페스트의 모습은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밖에서 바라다보는 것과 안에 들어가서 보는 광경이 달랐고 햇빛과 불빛이 보여주는 느낌의 차이가 매우 컸다. 해발 235m에 위치한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도나우 강’의 전경과 부다 왕궁, 어부의 요새 등을 보았고,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조성된 ‘영웅광장’에서 영웅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려 사진을 찍었다. ‘성 이슈투반 성당’을 보는 것을 끝으로 헝가리 여행을 마치고 네 시간에 걸쳐 ‘자그레브’로 이동했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유일하게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이다. 마침 미사가 집전 중인 자그레브 성당에서 잠시 미사에 참례했다. 성당에서 나오니 높이 선 황금빛 성모마리아상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해질 무렵 동유럽의 한적한 골목길과 카페에 앉아 담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크로아티아 국민들은 광적일 만큼 축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야경 투어를 하는 동안 곳곳에 경찰이 많이 배치 되어있어 현지인 가이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중요한 국제 경기가 열리는 날이라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홀리건들의 난동에 대비하는 거란다. 우리나라 축구 선수 중에 아는 선수가 있느냐고 묻자 박지성, 손흥민, 안정환 선수들의 이름을 댄다. 차범근 선수를 알기에는 그가 너무 젊은가보다. 코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잔디구장이 없어 맨바닥에서 축구하다 다친 거라고 쑥스럽게 웃는 모습에 축구사랑이 배어난다. 우리는 다시 ‘카를로바츠’로 이동하여 내일의 여정을 준비한다. 3월25일, 아침 식사 후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플리트비체’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만난 작고 조용한 마을 ‘라스토케’도 참 예뻤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맑은 호수와 나지막한 기와지붕, 조용한 시골마을이 정답다. 이어 16개의 호수와 계곡, 수많은 폭포로 이루어진 방대한 규모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와 원시림들도 장관이었지만 석회암 성분으로 인하여 녹색이나 에메랄드 빛 등 우리의 호수와는 확연히 다른 물 빛깔이 인상적이었다. 맑은 날씨에 왜 우산을 가져왔느냐고 현지인 가이드에게 물으니 며칠 전만 해도 눈과 비가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 우리는 참 행운아들이란다. 오히려 지구 곳곳에 나타나는 이상고온으로 추위 걱정을 덜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다시 네 시간이 걸리는 ‘네움’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보냈다.

3월 26일, 아침 식사 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높이 25m 길이 2km에 이르는 견고한 성벽에 올라보면 크로아티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지붕의 집들이 고물고물 붙어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저 멀리보이는 아드리아 해 푸른 물빛과의 조화가 참 평화롭다. 유람선을 타고 두브로브니크를 바라보니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기념품 가게가 펼쳐있는 좁은 뒷골목의 구시가지 ‘플라차’와 시계탑과 고딕양식의 창문이 눈길을 끄는 ‘스트라둔 거리’의 ‘스폰자궁전, 여름 축제 때 공연 장소인 렉터궁전’, 발길에 닳아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이 중세 유럽의 멋스러움에 흠뻑 빠지게 한다. ‘성모승천 대성당’에서 촛불을 봉헌하고 미사집전을 지켜본 후 달마시안의 마을 스플릿’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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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가 도열해 있는 마리안 해변 가까이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로마유적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미로 같은 유적지가 눈길을 끈다. 로마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인 ‘디오클레시안 궁전’의 아름다운 조각품과 이집트에서 직접 공수해온 ‘스핑크스’도 인상적이다. 또 왼쪽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거대한 크기의 ‘그레고리우스닌 동상’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가락을 스쳤는지 엄지발가락이 노랗게 닳아있었다. 물론 나도 그 엄지발가락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로써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고 ‘보디체’로 향한다.

3월 27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길이가 20km에 이르는 ‘포스토이나 카르스트 동굴’은 놀이공원에나 있는 동굴열차를 타고 2km 가량 들어간 후 관광이 시작된다. 동굴 속에 약 1만 명을 수용하는 콘서트장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스파게티를 꼭 닮은 종유석 등 동굴 안 갖가지 다양한 형태의 종유석들이 신비롭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저절로 겸손해진다. 이어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라냐’에 도착했다. 구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류블라니차강’의 아름다운 전경과 ‘트리플브릿지’는 류블라냐를 상징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를 보며 이 곳을 꼭 와보고 싶었다는 친구는 ‘프리세레노프 광장’에서 행복이 넘친다. 우리는 아이들 마냥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 좋아했다. 젊음이 넘치는 카페 거리에서 악사들의 연주 음악에 젖어들다 보니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 아닌가싶다.이어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슬로베니아 최고의 명승지 블레드’에 도착했다. 중세 왕족들의 휴양지에 걸맞게 아름다운 호수 마을 블레드, 호수 면에서 100m 높이에 세워진 블레드 성에서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슬로베니아 여행의 매력이다. 여행 중 유럽의 모든 밤이 그렇듯 오늘밤도 이렇게 아름답다.

3월 28일, 이제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침 식사 후 ‘블레드섬’에 들어갔다,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 가운데 구름처럼 떠 있는, 유럽인들이 가장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는 장소 블레드섬. 신랑이 신부를 안고 올라가면 행복하다는 속설에 얼마나 많은 신랑들이 이 99계단을 오르며 땀을 흘렸을까? 앞에 보이는 만년설을 바라보며 그 땀을 식히지 않았을까? 계단 위쪽에 소원의 종으로 유명한 ‘성모승천교회’가 있다. 세 번의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생각보다 종은 쉽게 울리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겨우 울린 종, 이제 전 세계의 평화와 온 누리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한 나의 소박한 소원은 이루어지리라, 아름다운 섬 블레드를 가슴에 새기며 마지막 여행지인 ‘베네치아’로 향한다.

베네치아의 다리

베네치아의 다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여기서도 감동의 물결은 계속된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수상도시를 만들었을까? 수상택시와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를 일주하는 동안은 인간의 능력도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기둥에 클로버 조각의 숫자로 신분을 나타내는 베네치아 건물엔 ‘두칼레궁’에 17개의 가장 많은 클로버가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 건물엔 파란 사선 줄무늬 기둥을 세워 표시하듯 관공서, 성당, 대학교 등 건물 하나하나에 의미와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두칼레 궁전과 ‘마르코 성당’이 있는 ㄷ자 형의 ‘산마르코 광장’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대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을 음미했다. 시기가 잘 맞아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야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엔젠가는 멋스러움 가득한 근사한 이 베네치아에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올 수 있기를… 마음에 영원히 새겨질 아름다운 베네치아 야경을 끝으로 사실상 이번 여행의 관광은 막을 내렸다. 3월 29일, 베니스를 출발, 모스크바를 거쳐 3월 30일 오전 11시 20분 인천국제공항 도착으로 행복한 유럽여행을 마침과 동시에 9일 간 접어두고, 놓아두고, 제쳐두었던 소중한 일상을 집어 들며 나는 다시 씩씩하게 현실로 복귀했다. 고백하자면 여행할 당시에는 그저 좋다, 멋지다, 아름답다는 생각에 취해 여행지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유럽인들이 살인적이라 부르는 우리의 빡빡한 일정 탓도 있지만 여행하려는 지역에 대해 무지해서였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뒤늦은 공부를 하고 여행할 때의 순간순간을 떠올리고 그 때의 감정에 이입하며 유럽여행을 다시 가보는 기쁨을 얻었다. 다음부터는 충분히 공부하고 출발해서 여행지를 나의 것으로 알차게 만들리라.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 참, 유럽에 가면 전차를 조심하시라, 하마터면 전차에 치여 한국에 돌아오지 못할 뻔 했다. 그래도 단언컨대, 이번 유럽여행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She is….홍미식

수필가이자 한국여성문예원 회원인 홍미식은 오마이뉴스와 구로뉴스에서 다년간 기자 생활을 한데 이어 검찰청 시민모니터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현대문학인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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