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여인 덩리쥔(鄧麗君)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 홍콩반환 20주년 맞아 평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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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8.01 16:29

■아시아의 여인 덩리쥔(鄧麗君)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  홍콩반환 20주년 맞아 평전 나와

문화인물/덩리쥔

아시아의 여인 덩리쥔(鄧麗君)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  홍콩반환 20주년 맞아 평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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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중국 당국으로부터 구속과 연금 등 20여년 가까이 갖은 핍박을 받다가 지난달 사망한 류사오보를 지지했던 한 여가수가 있다. 1995년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사망한 덩리쥔(등려군/鄧麗君/1953~1995)이다. 당시 공식적인 사망의 원인으로 기관지 천식으로 알려졌으나 마약 복용설과 함께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 따른 비판을 대중가요로 불렀다는 이유로 암살설이 나오기도 했다.                김지원 기자

 

대만의 국민가수 덩리쥔은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 충격을 받아, 홍콩에서 열린 천안문 사태 추모 공연에 출연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지금부터 제 삶의 목표는 중국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은 적대 관계에 있는 대만의 ‘애국연예인’인 덩리쥔의 노래들을 오랜 기간 금지곡으로 지정해뒀고, 그는 죽을 때까지 중국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1983년 중국 당국이 ‘덩리쥔의 노래 테이프를 가진 사람은 처벌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덩리쥔은 라디오에 나와 “여러분이 제 노래를 듣다가 처벌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능한 한 빨리 모든 테이프를 제출하십시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도 중국인들의 덩리쥔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 중국에선 불법 복제 음반 2억장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시진핑 주석도 “젊은 시절, 덩리쥔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민주투사이기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가수로서 뜨거운 찬사를 받아 ‘아시아의 연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낮에는 덩샤오핑, 밤에는 덩리쥔이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만과 중국, 일본 등을 비롯, 아시아 일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 2010년 미국CNN은 지난 50년간의 세계유명 음악인 20명을 선정했는데 짱궈룽(张国荣)과 덩리쥔이 화인 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노인들이 들으면 웃음꽃이 피고, 중년이 들으면 고민을 잊게 되며, 젊은이가 들으면 달콤한 기분이 되고, 어린아이가 들으면 춤을 추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목소리 하나로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풍부한 성량과 기교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은 아무나 지닐 수 없으니 말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티엔미미(첨밀밀)’이라는 노래가 방송을 탄 뒤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티엔미미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덩리쥔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노래는 이처럼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영화 티엔미미의 마지막장면. 뉴욕 거리의 전파상 앞에서 두 사람이 극적으로 재회하는데, TV에서 한 가수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때 흘러나오는 고인의 대표곡이 웨량다이비아오워디신(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가 물었죠/

나의 마음을 나를 대신해 달빛이 말을 하죠/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물었죠/

나의 사랑을 대신해 달빛이 말을 하죠/

가벼운 입맞춤 내 마음 흔들고 /

감은 두 눈 속에 그대 울다마요…”

지난 7월 18일 오후 서울 순화동 복합 문화 공간 ‘순화동천’에서는 이색 간담회가 열렸다. ‘아시아의 가희(歌姬)’로 불리는 대만 출신 가수에 관한 책을 같은 시점에 각각 출간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두 출판사가 함께 자리를 만든 것.

 

글항아리의 ‘덩리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는 덩리쥔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등려군문교기금회가 2013년 덩리쥔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공식 평전이다. 대만 언론인인 저자가 10년간 대만, 홍콩,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8개국 200여명을 인터뷰한 기록을 바탕으로 ‘인간 덩리쥔’의 삶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14살에 첫 음반을 발매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든 그녀는 42살에 천식으로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동남아시아와 일본에서 ‘아시아의 가희’, ‘노래 여왕’ 등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특히 덩리쥔은 한 번도 무대에 서 본 적이 없는 중국에서조차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2015년 무렵 페이스북에 누군가 그의 노래부르는 영상을 링크해서 따라가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노래였음에도 너무 매혹적이었다”면서 “단순히 영화 주제곡을 부른 가수로만 알고 있다가 너무나 큰 대스타라는 것을 알게 되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덩리쥔이 사귄 사람들, 죽음에 대한 설이 많아 공신력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공식평전을 높은 판권료를 지불하고 책을 냈다”고 덧붙였다.

한길사의 ‘가희 덩리쥔': 아시아의 밤을 노래하다’는 대만의 유학파로 ‘대만: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등을 펴낸 최창근씨가 덩리쥔의 삶을 당시의 사회적·역사적 풍경과 함께 그려냈다. 최씨에 따르면 덩리쥔은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오늘날 ‘소셜테이너’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1989년 중국에서 발생한 톈안먼 사태 당시 소신 있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최창근 작가는 “덩리쥔의 인생과 시대적인 배경을 씨줄과 날줄 삼아 엮어 시대 속에서 유기적·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다”면서 “사망에 얽힌 여러가지 설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탐구했다”고 밝혔다. 살아 생전 유명세에 따른 수많은 스캔들과 근거 없는 소문에 가려졌던 그녀의 내밀한 삶의 궤적을 좇는 시간이 흥미롭다. 두 책에 모두 실린 덩리쥔의 화보를 들여다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마침 올해는 ‘첨밀밀’ 국내 개봉 20주년, 홍콩 반환 20주년의 해이다.

 

한편 덩리쥔의 첫 사랑은 그의 나이 18세 때다. 상대는 말레이시아 화교청년 기업가인 린쩐파(林振发)였고 덩리쥔보다 8살 연상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린쩐파가 심장병이 발작하면서 그의 첫 사랑은 실패로 끝났다. 이어 싱가폴에서 오락사업을 하고 있는 주젠과도 마찬가지. 1972년 6월의 어느 날, 주젠은 홍콩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덩리쥔에게 홍콩으로 갈테니 공항에서 만나자는 전화를 한 뒤 그는 베트남상공에서 실종됐다. 홍콩 공항에서 주젠을 애타게 기다리던 덩리쥔은 사람 구경도 못하고 주젠과 사별해야 했다. 70연대 타이완의 영화스타 친샹린과 쿵푸스타였던 청룽, 궈쿵청 등과도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궈쿵청과의 사랑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했다. 싱가폴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애정이 불타올랐고 그 뒤 궈쿵청이 자기의 샹글리라호텔에서 덩리쥔에게 청혼을 하면서 결혼에 대한 담론이 현실화되는 듯 했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1990년 프랑스 파리로 이민을 가서 자기보다 10여살 아래인 폴로를 만났으나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에게 결혼은 어쩌면 사랑의 정착지가 아니라고 판단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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