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신영복의 시·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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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2.11 19:32 Updated

사람과 사람/신영복의 시·서·화

사람과 사람/신영복의 시·서·화

 

시대의 큰 별, 신영복 교수 긴 여행 떠나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희망의 언어

 

우리 시대의 지성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 12월 15일 감옥 밖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향년 75세. 신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은 후 투병 중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이날 오후 10시경 서울 목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철저하게 주류에서 벗어나 변방의 삶을 살아온 우리 시대의 큰 별이었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재직하던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20일 후인 1988년 8·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고인이 옥중에서 집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우리 시대의 정신적 유산으로 남았다. 생전의 그는 감옥의 고통에서 완전히 치유 받지 못했지만 많은 재소자들의 삶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눈을 갖게 됐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에 늘 관계와 연대를 강조해왔다. 그의 마지막 저서 『담론』에서는 우리 시대의 삶이 서로 만나서 선(線)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點)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얼굴 없는 인간관계, 만남이 없는 인간관계란 사실 관계없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고인은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다”며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라고 했다. 그가 남긴 작품7선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1, 석과불식

주역(周易) 산지박(山地剝)괘의 그림입니다. 절망과 역경(逆境)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나뭇잎 모두 떨어지고 나목의 가지 끝, 삭풍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과실을 씨과실이라 합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이 씨과실(碩果)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먹지 않고 땅에 심어서 새봄의 싹으로 돋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우리의 몫이며,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석과를 새싹으로, 다시 나무로 키우고, 숲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장구한 세월,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먼 여정은 무엇보다 먼저 엽락(葉落)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잎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환상을 청산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체로(體露)입니다. 잎을 떨어뜨리면 뼈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바로 이 뼈대를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뼈대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입니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역경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실패하고 있지 않은지 새해의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2, 청년시절

한 사람의 일생에서 청년시절이 없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아무리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꿈과 이상을 불태웠던 청년시절이 없다면 그 삶은 실패입니다. 청년시절은 꿈과 이상만으로도 빛나는 시절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는 청년시절이 없습니다. 가슴에 담을 푸른 하늘이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엠에프와 금융위기 때 실직하였고 지금은 수험 준비와 스펙 쌓기 알바와 비정규직이라는 혹독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진리와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부정한 정치권력과 천박한 상업문화를 배워야 하고, 우정과 사랑을 키우기보다는 친구를 괴롭히거나 친구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며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뿌리가 사람이고, 사람의 뿌리가 청년시절에 자라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의 비극입니다. 그 사회가 아무리 높은 빌딩을 세우더라도 꿈과 이상이 좌절되고 청년들이 아픈 사회는 실패입니다.

 

3,강물처럼

먼 길을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강물 같아야 합니다.

필생의 여정이라면 더구나 강물처럼 흘러가야 합니다.

강물에서 배우는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앞서려고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시내가 강을 만나면 강물이 됩니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이제 스스로 바다가 됩니다.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기어코 바다를 만들어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4,길마음

도로는 직선이기를 원하고 고속이기를 원합니다.

길은 곡선이기를 원하고 더디기를 원합니다.

도로는 속도와 효율성이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이며

길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경작되는 인간의 원리입니다.

도로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라면

길은 자기 자신이 목표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른 어떤 가치의 하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직선을 달리고 있지만

동물들은 맹수에게 쫓길 때가 아니면

결코 직선으로 달리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길이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보람찬 시간이어야 합니다.

 

 

5,자기의 이유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산책하다가

지팡이로 버섯 하나를 가리킵니다.

‘얘야 이것은 독버섯이야!’

독버섯으로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쓰러진 그를 부축하며 친구가 위로합니다.

 

비바람 불던 날 그가 보여준 따뜻한 우정을 이야기했지만

쓰러진 버섯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친구가 최후의 한마디 말을 건넵니다.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버섯인 우리들이 왜 ‘식탁의 논리’로

우리를 평가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6,기다림

평원을 달리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한동안 달린 다음에는 말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며 기다립니다.

영혼을 기다립니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라 합니다.

질주는 영혼을 두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영혼을 빠뜨리고 달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7,가장 먼 여행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과 마음 좋은 사람의 차이,

머리 아픈 사람과 마음 아픈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8 +���٪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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