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김동연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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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2.19 14:51

초대석/김동연 아주대 총장

초대석/김동연 아주대 총장

 

<유쾌한 반란>의 전도사 김동연 아주대 총장

따뜻한 가슴이 진정한 엘리트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홍반장>.2004년도에 방영된 코메디 영화의 주제다. 그렇다. 아주대 김동연 총장이 월드옥타의 홍반장을 자처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반란 전도사로 불리는 그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월드옥타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는 특강을 했고 10월 경기도 성남시에서 개최된 월드옥타 차세대무역스쿨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어 지난 16일에도 킨텍스에 열린 월드옥타 GBC개소식에 참석했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김 총장은 이날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특강을 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 우리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이 감소하는 등 위기의 직면에 놓여 있고, 체감 실업률이 22%에 달한다.”며 “이번에 개설된 GBC가 수출과 청년실업해소의 모멘텀이 될 것이다”고 격려했다. 반란은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키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은 ‘유쾌한 반란’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그 만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는 “수출에 대한 통계가 공식 발표된 이후 우리나라가 5분기 연속 수출 감소는 지금까지 딱 3차례가 전부였다”며 “지난 1982년과 2001년, 그리고 지난해 4.4분기까지 5분기 연속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7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그의 진단이다. 아주대는 현재 월드옥타 GBC의 파트너로 청년창업과 해외 일자리창출을 위한 소프트웨어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본지는 김 총장의 싱가포르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김 총장은 싱가포르 특강에서 2010년 G20정상회의 폐막식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외신기자들 앞에서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내용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지만 한국 기자들은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며 “침묵을 깬 기자는 질문 요청을 받지 않은 중국기자가 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벌어져 당시 오바마는 물론 배석자들도 난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김 총장은 아주대에 취임한 뒤 학생들과 자주 미팅을 가지려고 한다는 설명도 빼 놓지 않았다.

“저는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브라운백미팅’이라는 이름으로 2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과 미팅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궁금한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지만 질문은 커녕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화도 내지 않아요. 지금 우리사회에 젊은이들의 불만이 적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지금은 조금씩 변화는 하고 있으나 아직도 어색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물론 사회에 만연돼 있는 질문과 답이 없는 사회구조의 단면이다. 질문과 답이 없는 사회는 그만큼 역동성과 창의성이 떨어짐은 불문가지. 김 총장이 공무원시절부터 틈만 나면 반란을 일으키되 이왕이면 유쾌하게 반란을 일으키자는 취지로 강연회 등지에서 강조를 하다보니 이제는 ‘유쾌한 반란’의 전도사가 그의 아이콘이 됐다.

그가 제시하는 유쾌한 반란의 요지는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반란 ▷자기 자신의 틀을 깨는 자신에 대한 반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에 대한 반란 등 크게 3가지다. 그의 인생역정을 통해서 이 세 가지 반란을 정리한다.

 

환경과 자신, 그리고 사회에 대한 반란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다가 경기도 성남으로 강제 이주한 뒤 천막촌을 전전하며 중학교를 마쳤다. 그는 당초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덕수상고로 진학해 고3때 취직을 해 직장생활을 했다. 이때가 17살 때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3명의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소년가장이었다. 그는 억울했다. 대학을 가고 싶은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총장은 배움에 대한 갈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야간인 국제대학에 입학해 주경야독을 하면서 배움의 열정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연구’라는 잡지 한권을 우연히 집어 들면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밤에는 대학공부와 고시공부를 동시에 했다. 한마디로 피터지게 공부를 했다. 그리고 25세에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고졸신화의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된 배경이다.

“나를 지탱할 수 있던 것은 꿈과 열정이었습니다. 늘 목이 탔고, 그래서 항상 꿈을 꾸었습니다. 허황될 정도였어요. 눈먼 열정도 있었습니다. 결과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말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 자신을 쏟아 부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열정이었습니다. 바로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반란이었습니다.”

그는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의 첫발을 디뎠다. “요즘 경제기획원에 별 희한한 학교를 나온 얘들도 있다”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 언감생심 유학까지 준비했다. 근무성적도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 문제는 돈이었다. 그래서 국비유학이 유일한 통로였다. 치열하게 공부한 결과 입사 7년 만에 국비유학길에 오른다. 여기에 미국 정부와 미시간대학에서 주는 장학금 등 3가지 장학금을 받았다. 9개 과목에 모두 A.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던 터에 김 총장에게 걷잡을 수 없는 회의가 밀려온다. ‘왜 공부를 하는가’ ‘무슨 공부를 하는가’. 남부럽지 않은 좋은 성적과 학위는 답이 되지 못했고 그 근본적인 답이 필요했다.

 

부가 대물림 되는 불공정 사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멀리 있지 않았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깨달았다. 즉 지금까지 해 온 일은 주위나 사회에서 원하는 것인데 그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가 원했던 길은 무엇일까. 숱한 고민과 갈등이 따랐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정말 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자신을 뒤엎어야 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과의 결별, 즉 공부하는 태도에서부터 방법, 나아가 해야 할 일의 우선 순위, 그리고 인생관마저 바꾸려고 노력했다. 공직에 복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환경은 물론 사회에 대한 반란을 꿈꾸고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차관시절이다. 강원도 산골의 어느 가난한 한 중학교에서 보낸 편지를 손에 들었다. 먼 시골이지만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학교의 학생수는 21명, 교사가 8명인 오지의 학교였다. 그래서 그는 내용이 각기 다른 21권의 책을 사서 이름을 써서 학생들에게 선물을 하고 강의를 했다. 그의 강연 내용은 자신이 살아온 내용이 전부였지만 학생도 선생님도 함께 울음바다가 됐다는 회고다. 강의의 핵심은 허황된 꿈이라도 좋으니 꿈을 가지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이 편치 못했다. 가난과 사회적 지위의 세습이 대물림되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신분상승이나 계층이동의 장벽에 가로막혀 가난한 학생들의 꿈을 꺾지는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소외계층에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만들겠다는 사회에 대한 반란은 평생 화두가 됐다. 각 신문사에 고정칼럼을 연재하는 것은 물론 각종 강연회와 봉사활동을 통해 그가 던진 질문(환경, 자신, 사회)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사회의 인센티브 시스템에 대한 반란 역시 단호하다. 독과점 시장, 공공부문, 사회적 지대(rent)를 누리는 특정 직역(職域)사회 등 엘리트 카르텔의 벽을 낮춰야 공정사회가 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시장에서의 초과이윤에 대한 개혁을 주장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 등 인기직종의 시험에 한번 합격하면 평생에 걸쳐 철밥통을 얻는 우리사회의 현주소가 바로 최과이윤의 한 단면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영화 <왕이 된 남자 광해>를 예로 들면서 “진정한 엘리트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따뜻한 가슴이 없다면 진정한 엘리트가 될 수 없다”는 말로 엘리트의 각성을 촉구했다.

또한 “리더십의 핵심은 ‘겸손’이며 진정한 엘리트는 전문성이 아니라, 품성에서 나온다”는 짐콜린스의 말을 인용하며 “약자에 대한 따뜻한 손길이 보냈을 때 우리사회는 공정경쟁의 사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지난 2014년 7월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6개월 가량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의 농가주택에 칩거를 하면서 ‘강대국의 조건’이란 EBS방송프로를 시청했다”고 회고한 뒤 “인류역사상 로마 몽골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 5대 강대국의 조건이 바로 ‘관용’과 ‘혁신’이었다”고 밝혔다. 관용이란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혁신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바꾸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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