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 정영수-강안나 부부의 화려한 외출 … <노년의 샘>과 <눈부신 그늘>로 수필가·시인으로 등단한 정영수-강안나의 닭살 부부 이야기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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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9.03 14:52

■초대석 / 정영수-강안나 부부의 화려한 외출  …  <노년의 샘>과 <눈부신 그늘>로 수필가·시인으로 등단한  정영수-강안나의 닭살 부부 이야기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싶다”

초대석 / 정영수-강안나 부부의 화려한 외출

<노년의 샘>과 <눈부신 그늘>로 수필가·시인으로 등단한

정영수-강안나의 닭살 부부 이야기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싶다”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부부의 인연을 맺은지 어언 40년. 한국의 수출전도사로 해외로 나갔지만 이국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고단함과 외로움을 위로하고자 건넨 편지가 시가 되고 산문이 되어 마침내 우리 곁에 돌아왔다. 2017년 가을의 어느 멋진 날에 남산소재 힐튼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노년의 샘>과 <눈부신 그늘>로 각각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한 정영수 CJ그룹 글로벌 고문과 그의 아내 강안나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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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두 손을 맞잡았고 40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70문턱에 들어서면서 둘은 똑 같은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고 마침내 하나가 됐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문학의 힘이 주는 예술이 아닐까. 슬하의 세 자녀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워냈고, 이들 또한 엄마 아빠의 길을 따라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돼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해외에서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개척했던 한가정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엿보는 기획으로 진행돼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싱가포르에서 10년간 CNA앵커로 맹활약 했던 맏딸 정세은씨가 사회를 보고 장남 정종환 CJ상무가 가족대표 인사를 했다. 또한 차녀인 정지은 씨가 폐회식 인사를, 그의 딸인 조예인 어린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바치는 ‘우리 함께’라는 동시를 낭송하면서 백미를 장식했다. 조예인 학생은 할머니에게 동시를 배워 직접 썼다고 한다. 며느리인 이경후 CJ상무도 영상을 맡아 출판기념회의 의미를 보탰다. 이날 출판기념회 초청된 200여명의 인사들은 두 부부의 글쓰기를 지도해준 문인들을 비롯해 가족과 고향친구, 그리고 해외에서 형제애보다 강한 우정을 나눠왔던 지인 등으로 제한했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는 물론 미국 등지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온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노종현 싱가포르한인회장, 김우재 전 월드옥타 회장을 윤병세·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김준규 전 검찰총장, 서기석 헌법재판관 등 국내외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항상 함께

                                              글: 조예인

파도처럼 열정적으로

바다를 치듯

항상 최선을 다하는

우리 할아버지

마치 돌고래가

물속에서 멋지게 헤엄치듯

개인기를 마음껏 보여주는

멋쟁이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가

너무 좋다.

폭풍이 지나가고

다시 해가 반갑게 맞아주듯

언제나 반갑고 다정한

우리 할머니

마치 모래가

조개들을 품은 듯

넓고 넓은 마음으로

포근하게 안아주는

따뜻한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너무 좋다

2017.9.1

 

 

꽃은 품지 않으면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해외에서 40년을 살아온 이들의 삶을 딱히 몇 줄로 옮긴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음은 불문가지. 하지만 이날 행사를 통해 이들의 삶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몇 가지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저자와의 대화시간에 참가자들은 문학에 대한 궁금증 보다 세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운 노하우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보였다.

이에 대해 강안나 시인은 “‘특별함’도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한 것이 전부다”며“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생각을 잘 이해해주고 따라주는 행운이 주어졌을 뿐이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정영수 작가도 몇 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화초에 물을 줄때도 정성과 사랑을 쏟아야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이 아니냐”며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는 말로 평범하면서도 깊이가 다른 교육철학을 피력한 바 있다.

이날의 핵심 주인공인 강 시인은 “꽃은 품지 않으면 사랑스러울 수가 없고, 빛은 나눌수록 눈부시다”며 “누군가의 그늘이 될 수 있도록 늘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며 특히 가족사랑에 대한 애틋함을 건넸다.

“무엇보다도 늘 저의 곁에서 큰 나무 역할을 해주신 남편 정영수님! 사랑합니다. 저는 경상도 여자로 특이하게 사랑의 표시가 아주 인색한 여자인데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했으니까 몇 백번은 한 셈이죠? 사랑하는 아들 셋, 딸 셋, 그리고 네 손주들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너희들이 있어 정말 고맙고 행복하단다. 특히 닳을까 적실까 조심스런 내 막내딸 경후야! 정말 사랑해!”

강 시인은 <눈부신 그늘>이 출간되기까지 음양으로 도움을 준 정희성·윤후명·박준영·박규리 시인과 황승선 소설가에 대한 고마움도 빼 놓지 않았다.

이에 앞서 정영수 작가는 “2012년 큰 수술을 받고 회복한 뒤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썼던 글들을 모아 산문집을 낸데 이어 칠순을 앞둔 2015년 에세이집 <70찻잔>을 출간했으나 집안에 우환이 생겨 출판기념회를 하지 못하던 터에 이번에 아내의 첫 시집 <눈부신 그늘>이 출간돼 부부가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게 됐다”며 “이번 행사는 아내가 낯설고 물 설은 땅에서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고마움과 위로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표현하지 않은 사람과 뜯어보지 않은 편지는 시절이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써 봤는데 글을 쓴다는 게 역부족이고 사치”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기도 했다. 또한 정 작가는 “지금까지 40년간 졸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정말 열심히 살고 또 살았다”며 “남은 여생동안 사랑하고 봉사하고 배려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정 작가가 1977년 홍콩 주재원으로 떠날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지금의 베트남 수준인 1,644불이었다. 수출도 불과 100억불에 불과했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총 수출은 5,000억불. 정 작가의 경우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한 수출전사들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들이다.

장남인 정종환 상무는 가족을 대표해 “부모님 결혼 40주년이자 해외거주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기념회를 열게 됐다”며 “아버지인 정영수 작가는 2012년 산문집 ‘멋진 촌놈’을 출간한데 이어 2015년 수필집 ‘70찻잔’을 낸 뒤 2017년 월간문학 7월호에 ‘노년의 샘’으로 정식 수필가로 등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어머니 강안나 시인은 1986년 중앙일보 아주 백일장대회 성인부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7년 문학나무 신인작품상 시 부문에 입선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말했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

기자는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9월 7일 한남동 자택에서 강 시인과 20여분 인터뷰를 했다. 정영수-강안나 부부는 결혼 전 약속 하나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면 집에서 엄마가 따뜻하게 맞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강 시인은 편하게 외출 한번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 학교를 등교시킨 뒤에도 두 시간은 꼭 대기를 했다. 혹시 학교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등교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강 시인은 세 아이들이 부모의 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 약속을 어겨 본적이 없다고 했다. 교사출신인 강 시인은 1976년 말 결혼했지만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남편으로 홍콩 주재원으로 훌쩍 날아가 버리자 맏딸을 안고 진주로 내려갔다. 맏며느리가 결혼한 뒤 곧바로 해외로 나가게 되면 가족들과 정신적 교감을 할 없다는 남편의 바람이 크게 작용했다. 강 시인은 8개월간 진주에서 집안 어르신들을 모신 뒤에서야 남편이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홍콩을 들어갈 수 있었다. 1984년 남편이 싱가포르에서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경제생활은 늘 쪼들렸다. 누구나 한번쯤은 눈길을 돌리는 명품매장은 언강생심. 근처도 갈 수 없었다. 이런 형편에도 남편은 늘 한인사회에 통 큰 기부를 했다. 하물며 생활비가 부족해도 목소리는 혀 끝에서 맴돌뿐이었다. 강 시인은 “생활비로 고통을 받고 살았지만 함께 살다보니 이런 남편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소화가 됐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고 남편의 사업도 안정을 찾아가면서 그때서야 강 시인에게도 시간적·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종종 남편과 편지로 소통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70을 바라보면서 고향과 조국이 더욱 애절하고 간절하게 다가왔다”말로 문학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학창시절부터 꿈틀대던 끼가 다시 발동한 것이다. 그 가능성도 확인된바 있다. 결혼 10년차에 기고했던 <서른 여덟해의 나들이>를 비롯해 수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그는 도전했다. 이른 봄날, 얼음장을 뚫고 일어선 복수초가 되듯 말이다. 젊은이들은 직장생활에다 연애도 해야 하는 등 늘 시간이 부족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두 배 세배의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밤잠을 설치며 글감 찾기에 나섰다. 지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생기가 돋고 삶의 에너지가 됐다.

“처음에는 가족사를 쓸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박규리 시인님이 시를 적극 권유해 시를 쓰게 됐고, 정희성 시인님도 ‘시는 건축물과 같다’면서 기둥 하나 잘못 세우면 건물이 무너지듯 시어(詩語) 선정에 혼신을 다하라고 말씀하셨어요. 14개월 동안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한 줄의 시를 쓰기를 수십 수백번 탈고과정을 거쳐 이번에 시집이 나온 것입니다.”

강 시인은 “글을 쓰기 위한 상상이 너무나 즐거웠고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며 “처음에는 나 자신을 위한 독백이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옆 사람이 바로 나이며 그래서 그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날 강 시인은 내년 쯤 동시집을 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강 시인의 글들은 딱히 경계가 없다. 시를 비롯해 산문·꽁트·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울림이 적지 않다. 여고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문학도의 길을 권유받은 그가 아닌가!

“초·중·고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글쓰기로 입선한 적이 수차례 있었지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A4용지 한 장에 아무 글이나 쓰고 싶은 것을 써보라고 해서 썼는데 선생님께서 이걸 보시고 문학도의 길을 제안 했어요. 주위에서도 적극 권유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결혼 후 실천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으로 키워낸 자랑스런 아들과 딸들

정영수 강안나 부부의 자녀들은 우선 화려한 스펙이 돋보인다. 영어·중국어·한국어는 기본이다. 딸 들은 국내 명문대를 졸업했고 아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수재다. 하지만 이런 스펙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조금은 세속적이지 않을까 싶다. 첫째를 제외하고

둘째와 셋째는 외국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3남매 모두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상대를 배려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도 마찬가지. 맏딸 정세은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듬해 해외로 나가 싱가포르에서 초중고를 마친 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아리랑 TV앵커로 시작해 CNA앵커로 10년간 근무하다가 현재 육아 중에 있다. CNA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22여 개국에서 약 2억명의 시청자를 가진 아시아 최대의 방송국이다. 10년간 최고의 앵커로 활동할 때 소형 자동차 한 대 사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에 “회사가 집에서 가까우니 택시타고 출퇴근 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기업의 며느리가 됐지만 아직도 딸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신발과 옷을 사 입는다. 맏딸이 명품 옷 하나라도 사 입고 다녔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도 거절하고 “동대문 남대문시장의 옷이 편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둘째인 정지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유수의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아버지 친구 아들과 결혼한 뒤 현재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막내 정종환 CJ상무는 미국 최고의 명문 컬럼비아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Ernst&Young과 City Bank에서 근무하다 중국 칭화대 MBA과정을 거쳐 현재 CJ그룹 미주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종환-이경후 주례를 섰던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은 “이들 부부는 늘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지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다”고 치켜세웠다. 정 상무는 180cm가 넘는 장신이다. 정 작가는 이코노믹 비행기 좌석이 비좁아 불편해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장거리 비행에 힘들텐데, 비즈니스 좌석으로 바꿔 타고 다니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정 상무는 “아직 젊은데 이정도 불편함은 감수하겠다”는 말에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달도 크고 작은 행사 참석을 위해 LA에서 3번 한국에 돌아왔다가 귀국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아버지는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다. 다음은 멋진 촌놈에 실린 강 시인의 둘째딸 사연이 담긴 <돌아온 명품>이야기다.

 

둘째와 셋째를 미국 동부 명문학교에 입학시키고

제발 아이들 걱정 말고 잘 지내시라는 선생님의 부탁도 있었건만

나는 수개월동안 외출도 외식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아이 룸메이트의 옷장에 널려진 명품 옷들이 마음이 걸린다.

‘이제 곧 한파가 올텐데…’

큰 마음먹고 명품 두벌을 사서 보냈다.

그런데 하얀 종이위에 둘째 딸아이의 마음과 함께 돌아왔다.

“사랑하는 엄마, 저희 걱정은 마세요.

엄마 나이되면 사 입을 게요. 이쁜 것으로 바꿔 입으세요.”

아무래도 내 생각이 짧았나 보다.

                       1995년 11. 어느 날의 일기중에서

 

어머니! 이제는 당신의 삶을 사세요

김덕룡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은 이날 출판기념회 축사를 통해 “40년간 한국경제발전과 교민사회발전을 위해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하셨다”며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앞으로도 고향과 교민사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에 많은 역할을 기대한다”고 치하했다. 소설과 시의 경계, 시공간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한국문학의 독보적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진 시인이자 소설가인 윤후명 작가는 “우리 문단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애매한 시와 문학이 메워지고 있어 원로들의 걱정이 많다”며 “강안나 시인의 ‘순수’와 ‘서정’이 매우 놀랍고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이어 “강 시인이 시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 시인에게 문학하는 최초의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격려했다. 시집 <눈부신 그늘>의 해설을 쓴 박준영 시인도 “강안나 시인의 시는 젊고 감칠맛이 난다”며 “진주라는 고향과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들, 지리산·촉석루·뒤뜰의 감나무 등등 오늘이야말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색동옷을 입는 날이다”고 위로했다.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은 “부부출판기념회를 연다는 초청장을 받고 ‘생뚱맞다’‘나이 70에 닭살이 돋았다’며 싱가포르 촌놈(?)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과단성에 놀랐다”고 운을 뗀 뒤 “강 시인과 며느리가 자주 통화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고부간 너무나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정영수 작가가 손주 이름을 ‘정이한’으로 지은 배경도 설명했다. 정씨와 이씨가 만나 태어난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강 시인의 진주여고 동창인 최문희씨는 “100년 역사를 앞둔 진주여고는 비봉산과 진주성 등으로 둘러싸여 안나의 감성과 시심을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는 요람이었다.”며 “백일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강 시인은 진주여고가 배출한 최고의 선물이다”고 자랑했다. 싱가포르 한인사회에서 강 시인과 함께 동거동락을 해 왔던 최남숙씨는 “강 시인은 세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로서, 남편을 한인사회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한 아내로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했다”며 “강 시인의 시집 <눈부신 그늘>이 바로 강 시인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박규리 시인도 “<70>찻잔을 읽고 정영수 작가의 남다른 나라사랑에 여러 번 가슴이 울컥했다”며 “특히 국적을 가리지 않고 불쌍한 이웃들, 특히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은 마음에 같은 선생님으로써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바리톤  김동규 상명대 교수는 <무정한 마음>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러 출판기념회를 빛냈다.

정지은은 폐막인사를 통해 “오늘 부모님에게는 가장 흐뭇하고 설레는 자리가 됐을 것이라며 자녀들 역시 흐뭇하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40년간 가족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머니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며 “오늘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멋지고 사랑스럽다”는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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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9.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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