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트럼프, 문주현 엠디엠 회장의 성공신화 “나에게 실패는 없다” 부동산업계 미다스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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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8.07.11 11:33 Updated

■한국판 트럼프, 문주현 엠디엠 회장의 성공신화  “나에게 실패는 없다”  부동산업계 미다스의 손

장학사업 약속 지켜 “행복”

작고 강한 송곳이 구멍 뚫어

“버스를 잘못 탓으면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내려야지 끝까지 가면 되겠느냐”

그는 길이 아니면 즉시 방향을 바꿔 길을 만드는 일에 누구보다 신속하고 과감했다. 삶이 그랬고 사업도 그랬다. 어린 시절 농약을 뿌리다가 죽을 고비를 두어 차례 넘긴 뒤 분무기통을 내던지고 바다로 나가 김 양식을 했다.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자연과의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일 역시 자신의 길이 “아니다” 싶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폴리텍대(직업훈련원)기계과에 입학해 하루 16시간 넘게 쇳가루와 씨름하다보니 온몸에서 쇳독이 오르도록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검정고시를 거쳐 27살의 나이에 경희대에 입학한 배경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노신의 말처럼 그는 평생 무에서 유를 찾아 떠도는 유랑자 같은 삶을 걸어왔다.

문주현 엠디엠 회장이 지난 3일 밀레니엄 서울힐튼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광주전남고교연합회 조찬포럼에서 ‘기업성공을 위한 알찬 준비’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보리밥’에다 ‘야전잠바’한 벌이 전부였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고 회고했다.

이날 그는 슬라이드영상을 통해 자신의 고향인 장흥과 천관산이 내려다보이는 회진포(會鎭浦)를 소개했다. 회진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겨둔 곳이다. 회진포는 한승원·이청준·송기숙 등 한국의 걸출한 소설가를 배출한 문학의 고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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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회장은 “23전 23승을 올린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데는 회진포가 큰 역할을 했다”며 “5000만원으로 창업을 한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실패한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거북선과 MDM=이순신과 문주현’이 연상됐다. 한국 최고의 부동산 디벨로퍼로서 자신감이 아닌가 싶다. 문 회장을 두고 ‘한국판 트럼프’, ‘미다스의 손’ 등 수많은 수식어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미 홍콩과 미국 등지에서도 MDM을 벤치마킹하러 방한할 정도다. 문 회장은 디벨로퍼에 대해 “땅을 매입해 기획에서부터 설계, 인허가, 금융, 시공사선정, 마케팅, 시공관리, 입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는 ‘코디네이터’다”며 “오케스트라로 치면 지휘자”라고 설명했다. 이에 디벨로퍼는 판을 바꾸는 ‘아이디어’와 ‘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디어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는 무한한 상상력의 결과물로 맨하탄과 두바이는 물론 홍콩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를 꼽았다. 10년간 미분양 됐던 땅을 매입해 황금밭으로 일군 사례는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다. 그는 1998년 그가 몸담았던 회사가 무너지면서 서초동의 작은 오피스텔 방 한 칸에서 자본금 5000만원으로 분양대행업체를 차렸다.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서울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서초동 현대 슈퍼빌, 분당 파크뷰, 두산 파빌리온 등 그가 맡은 분양대행은 완판의 연속이었다. 대략 16조원(4만세대)의 매출을 올리는 등 그야말로 미다스의 손이었다. 이때 받은 분양 수수료만도 1000억원. 2007년도의 일이다. 한국 최고의 디벨로퍼가 되기 위한 종잣돈은 이렇게 시작됐다. 2007년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부산 해운대 땅을 사들였다. 당시 인근 아파트가 평당 900만원하던 시절, 1600만원짜리 최고급 주상복합건물(대우월드마크 센텀)로 승부를 걸어 ‘대박’을 터뜨렸다. 양면 개방형 설계와 조망권을 강조한 동배치, 특화된 커뮤니티 시설로 주목받으며 6개월 만에 100%계약을 마친 것이다. 이날 문 회장은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의 성공사례를 소개했다. 계약금 10억원으로 시작한 월드마크 프로젝트(6700평)에서도 1000억원의 수익을 거머쥐었다. 그는 “경기개발공사가 방치하다시피 한 경사진 땅에 주목했다”며 “경사진 땅을 생긴 데로 시공해 반지하로 분양했다”고 밝혔다. 반지하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1층으로 보이는 점에 주목한 것. 반지하는 용적률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본 것이다. 대다수 건설업체들은 경사진 땅은 옹벽을 쳐서 지하로 만든 것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했던 것.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소홀하지 않은 작은 차이가 부동산 디벨로퍼로서의 성공 신화를 쓴 배경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광교 호수공원 앞 더 샵 레이크시티다. ‘삼시세끼 식사와 설거지에서 해방’이라는 컨셉으로 또 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과거에는 집에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관장했지만 지금은 아프거나 출산을 하려면 병원으로,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가는 시대다. 하물며 공부도 집에서 하지 않고 도서관이나 카페로 간다”며 호텔같은 집을 내 놓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레이크시티는 주부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즈니스에는 늘 경쟁이 존재하는 법. 그는 2010년 공기업인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다. 하나은행과 경쟁했고 서울 역삼동 카이트타워를 매입할 때는 삼성생명과 붙었지만 늘 승부사 기질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구멍을 뚫을 때는 작고 강한 송곳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문 회장의 삶에도 적지 않은 고비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농약에 중독돼 쓰러지기도 했고 대학생 때는 등록금을 마련하겠다고 일과 학업을 무리하게 병행한 탓에 폐결핵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과로로 폐가 나빠져 고향에서 요양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 회장은 대학시절, ‘빚지고 살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회고했다. 지난했던 그의 삶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장흥에서 농사를 짓고 손이 얼어 오줌을 싸서 손을 녹이며 김 양식을 하던 때의 경험을 장학재단 이사장님께 편지로 쓴 적이 있었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해서 대학 3‧4학년 2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당시 장학증서를 받으면서 꼭 돈을 벌어 후배들에게 갚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2001년 5억원으로 출발한 문주장학재단은 현재 335억원으로 불어났다. 현재까지 230명이 수혜를 받고 43억원의 장학금이 지급됐다. 이날 문 회장은 “대학시절 장학금을 받은 뒤 돈을 벌어 후배들을 돕겠다는 약속과 환갑 때까지 100억원을 목표로 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행복하다”며 “이 추세로라면 향후 500억원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문주장학재단에서는 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장학금을 지급한다. 장학재단 운영외에도 서울시와 관악구에 <서울책방>, <용꿈 꾸는 작은 도서관> 시설기부, 국내 최초의 한국여자바둑리그 출범 후원, 평창동계올림픽 후원, 모교인 경희대학교와 가천대학교에 발전기금 후원, 사회복지재단 후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문주현 회장

△1958년 전남 장흥 출생

△1978년 검정고시 합격

△1987년 경희대 회계학과

△1998년 MDM설립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 설립

△2010년 한국자산신탁 인수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 설립

△2013년 서울탁구협회 회장

△2014~현재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 한국자산에셋운용 설립

△2016~현재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 총회장

△2016~현재 한국기원 이사

△2017~현재 한국부동산경제단체연합회장

△2017년 엠디엠투자운용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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