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경옥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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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5.06 19:53

인터뷰/정경옥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장

인터뷰/정경옥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장

 

정경옥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장

경제와 문화가 수레바퀴처럼 맞물려야 선진국

 

1년에 5-6차례 한국을 방문한다. 택시도 타지 않는다. 불친절하다는 이유다. 대신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건강도 챙기고 택시비를 아껴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장애인들에게 보탠다. 지난달 22일 울산에서 개최된 월드옥타 행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던 정경옥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World-KIMWA/월드키마) 회장을 4월 26일 오후 2호선 열차 안에서 우연하게 만난 뒤 이틀 뒤인 28일 양재동 K-호텔에서 인터뷰를 했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정경옥 회장은 “전 세계에서 국제결혼을 한 한국인이 대략 50만명 정도인 만큼, 자녀 등 가족을 포함하면 150만명이 된다”며 “언젠가 한국인 다문화가정에서 오바마같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글로벌 시대, 다문화 가정은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며 한국의 경제영토를 넓히는 산업역군이다”며 다문화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특히 정 회장은 “호주는 다문화사회로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로 다문화정책을 다루는 장관이 있다”며 한국 다문화 사회의 후진성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즉 한국의 다문화정책이 볼펜 굴리는 소리만 들릴 뿐, 삽질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다는 것. 한국에서도 다문화 출신들이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등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과 진입장벽을 없애야 비로소 선진국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다. 그는 선진국에서 다문화 가정은 “주류 진입이 훨씬 빠르다”며 “다문화 2세들의 경우 영리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 기본적인 몇 개의 나라에 대한 상식도 풍부하다”는 말로 다문화 예찬론을 설파했다. 이만이 아니다. 특히 그는 “글로벌 시대 다문화사회가 제대로 정착이 돼야 달러가 유입되고 갑작스럽게 닥칠 수 있는 경제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진입한 한국이 이제는 정신․문화적으로도 세계 10위 안에 들어야 하지 않느냐“며 ”선진국은 경제와 문화가 수레바퀴처럼 나란히 굴러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남편이 했던 말을 인용해, 한국정치의 구태도 지적했다. 국회의사당이 서로 등을 대고 마주하는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자주 싸운다고 일갈했다. 뉴질랜드 등 정치선진국은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는다는 것. 또한 정 회장은 “정치인은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되며, 권력을 나눠가졌을 때 올바른 정치문화가 정착된다”는 말도 건넸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격을 갖추었을 때 완성

충남 부여출신인 정 회장은 서울에서 성장했고 1980년 남부 호주로 이민을 갔다. “결혼을 빨리하라”는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도피성 유학을 떠난 그는 애들레이드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는 호주 유학 1년 만에 덜컥 외국인과 결혼을 했다.

“어느 날 출근하는 남편의 구두를 닦아 준 적이 있어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깜짝 놀라면서 ‘당신은 나의 연인이자 친구이지 노예가 아니다’며 구두 닦는 일을 못하게 하더군요. 호주 사람들은 늘 상대에 대한 배려도 격을 갖추는 모습에 감동을 했습니다. 남을 돕는 기부도 마찬가지예요”

그의 남편인 루위스 씨는 호주 하원의원 7선의 관록을 지닌 친한파 정치인으로 최근 정계에서 은퇴를 했다. 남편이 하원의원 의장이 되면서 그는 관사에서 살았다. 하지만 남편이 정치일선에서 퇴임하자 집안에서 쓰던 가구마저 정부에서 빼 나가는 모습을 봤다. 호주의 청렴한 문화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1995년 사업에 뛰어 들었다. 남편이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다고 거물 정치인인 남편의 도움이나 특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이 건넨 정보 덕분에 방글라데시에 풍차 180대를 팔아 꽤 큰 돈을 만져 봤다고 웃었다. 당시 이 사업에는 한국과 호주 양국의 회사들이 합작으로 수출한 사례다. 그에게는 슬하에 2명의 딸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전체 유산 가운데 대학생의 장학금과 구족화가에게 각각 기부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철광회사인 로열 리소스 등 8개의 계열사에서 총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거상의 반열에 오른 그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40여개 각종 사회단체에 매월 일정금액을 기부한다고 했다. 아울러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 등지를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고 봉사활동도 다닌다. 한․호상공인연합회장,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호주지회 명예회장과 상임이사, 남부호주한인회 명예회장, 대양주한인회 총연합회 이사장, 충남 국제자문위원, 광주광역시 자문위원등으로 활동한데 이어 지난 2014년 임기 2년의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교육은 체험학습에서 시작돼야

국제결혼을 통해 각국에 정착한 한인여성들의 모임인 월드키마는 현재 16개국 34개 지회에 5,0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2005년부터는 회원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 결혼 이주여성과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매년 고국에서 국제결혼여성 세계대회를 열고 있다. 오는 10월 제주에서 3박4일간 120여명이 참석해 12회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월드키마는 세계대회를 열면서 다문화가정 자녀로 구성된 ‘꿈나무 오케스트라’와 경기도 동두천의 다문화학교 ACA(Amerasian Christian Academy)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한편 다문화가정 자녀를 미국으로 초청해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월드키마 각 지회는 현지에서 김치와 만두 등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한국문화체험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정 회장은 3년 전 초등학교 아이를 호주로 초청해 회원 집에서 3개월간 함께 생활하게 한 뒤 한국으로 보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짧은 3개월 과정이지만 체험학습 이후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감사하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들었다는 말을 전했다. 또 다른 사례.

“4년 전 전남 광주의 한 대학생을 우리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을 시켰는데 너무나 버릇없는 행동을 하더군요. 3일째 되는 날 학생을 불러 사무실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는 잘 해주겠다는 단서를 달았어요.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해주겠다’고 하자 ‘그 학생은 알고 싶다’고 해서 일하는 자세는 물론 회사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몸가짐에 대한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은 ‘사실 제가 광주대 특별장학생이다’며 낼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해서 3개월을 무사히 마쳤는데 이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신혼여행을 호주로 와서 만났습니다. 한국의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현장실습이 중요합니다. 호주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이런 현장교육이 일반화 돼 있습니다.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요즘 정 회장은 차세대는 물론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할 때 마다 명확한 꿈과 비전을 설명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고 했다.

 


 

5월의 6·25 전쟁영웅 마거릿 히긴스

한국전 참상 전 세계에 타전.. 여기자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마거릿 히긴스’ 미국 종군기자를 5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마거릿 히긴스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6·25전쟁 발발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이후 그녀는 취재 기간의 대부분을 최전선에서 보내며 6·25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특히 그녀는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통영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우리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직접 종군 취재하면서 그들의 용맹성을 전 세계에 알려 이후 해병대가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당시 그녀가 헤럴드 트리뷴 본사에 타전했던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이라는 표현은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의 자랑스러운 애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늘 종군기자의 사명감으로 현장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는 유엔군 병사들과 함께 빗발치는 총탄 세례를 받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으며, 이를 생생히 타전하여 세계 만방에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알렸다.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워 인 코리아(War in Korea)’를 저술하여 여기자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4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지만, 미국 정부는 그녀의 공적을 인정하여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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