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식품기업, 반드시 이뤄내겠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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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6.27 14:57 Updated

“글로벌 식품기업, 반드시 이뤄내겠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삼장통합경영의 심플함이 하림의 경쟁력

  

하림그룹을 닭고기 파는 회사로만 알면 큰 착각이다. 사료는 물론 곡물 수송에서부터 홈쇼핑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식품 전문 콤플렉스 기업으로 최근 대기업 반열에 오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림의 성공의 키워드는 ‘단순함’이었다. 기업들이 한 수 배우고자 줄을 서는 하림의 ‘삼장(농장-공장-시장)통합 경영시스템’은 이렇듯 단순함에서 나왔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성은 기자

 

김홍국 회장은 “하림은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는 간결한 프로세스, 품질에 집중하는 단순한 시스템을 추구한다. 여기에 전문성까지 시스템화하지 않으면 결코 단순해지지 않는다”는 ‘단순함’의 이론을 전한다. 이른바 시스템화 된 전문성을 말한다. 이를 위해 ‘식품’을 중심으로 한 대동단결이다. 따로 떨어져 있는 ‘생산’ ‘가공’ ‘유통’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 삼장통합경영은 지금의 하림을 만들어준 저력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께서 몸보신 하라고 주신 병아리 10마리가 좋아 미꾸라지에 개구리까지 삶아 먹이고 부모님 몰래 쌀독의 쌀까지 퍼낸 정성을 들이던 소년은 병아리 사업가가 되었다. 닭 장수들이 욕심을 낼 정도로 잘 키운 병아리를 팔아 그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다. 돼지와 염소도 키우기 시작했다. 오직 가축을 기르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 가족과 주변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농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전국영농학생 전진대회’에 출전, 원예와 축산 부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양계장을 직접 설계시공해서 1,000여 마리가 넘은 닭을 키우고 돼지도 30여 마리로 늘렸다. 이른바 고교생 사업가였다. 공무원 월급이 20만원 정도였던 당시 월 수익이 300만원이 넘었다. 돈이 꽤 모여 4000만원의 자본금으로 18세 되던 해에 농장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양계사업에 뛰어들었다. 학교 졸업 후 사업이 성공적으로 시작되자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업에 소홀해질 무렵 1982년 전국적인 닭 값 폭락사태가 몰아닥치면서 그간의 성과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사업은 무너졌고 그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돼지막사에서 날을 지세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시름을 접고 한 식품회사의 영업사원이 된 그는 밤마다 와신상담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각종 서적과 논문을 뒤지며 닭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 정보를 얻고 지식을 쌓아갔다. 이때쯤 우연히 한 강연회에서 통합경영이라는 경영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통합경영 이론은 돼지 값이 폭락하여 졸지에 빚쟁이 신세가 되었던 시절 동네가게에 진열된 소시지를 보면서 ‘왜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 값은 그대로일까?’ 하던 의문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그는 1차 농축산물에 부가가치를 만들어 2차 가공식품으로 만들고 이를 시장에 내다파는 삼장(농장-공장-시장)통합경영이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닭이나 돼지에 먹이는 사료도 직접 조달하면 원가를 절감하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산원가는 물론 물류구조의 개선, 유통마진의 확대 등에 대한 생각들이 그를 마구 흥분시켰다. 삼장통합경영의 밑그림이 그려진 뒤 1986년 다니던 식품회사에 사표를 내고 2년 동안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양계장을 인수하여 재기에 나섰다. 삼장통합 경영시스템의 구현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먼저 업계 최초로 병아리의 계약사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는 부지 매입과 인건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계약농가에 시설재, 종계, 사료 및 모든 관련 부재료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사육을 실시했다. 농가는 사육한 대가만큼 경제적인 보상을 받게 되므로 결국 수익이 안정되고 생산원가를 최소한 낮출 수 있는 윈윈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사육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다. 1987년에는 뜻을 같이하는 주주를 모집하여 ㈜하림식품을 설립, 이리도계장을 인수했다. 가공공장을 확보함으로써 사육, 가공, 판매를 통합하는 삼장통합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92년 국내시장 업계 1위로 올라선 후 1997년 숙원이던 육가공 공장을 완공했다. 하림의 육가공 공장은 닭고기를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생산공장으로 국내 최초였으며 닭고기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우리나라 닭고기 산업에 새로운 장을 연 쾌거였다.

 

지금의 하림을 만든 세 번의 시련

첫 번째 시련은 젊은 시절의 자만이 초래한 도산이었다. 당시의 시련은 삼장통합경영이라는 선물을 그에게 선사했다. 그가 만난 두 번째 시련은 외환위기다. 은행의 돈줄도 막히고 소비자 줄어 매출이 곤두박질쳤지만 국내에서는 자금을 변통하기 어려웠다. 국제부흥개발은행 산하의 국제금융공사(IFC)와 연결 끈을 찾게 되어 백방의 노력 끝에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회사와 김홍국 회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위기는 두 가지 시련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2003년, 만평이 넘는 본사 공장이 송두리째 불타버린 대화재가 발생했다. 피해액만 1,000억원이 넘었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였다.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한쪽에서는 공장을 새로 짓고 한쪽에서는 다른 공장을 빌려 닭을 생산가공해 거래처와 공급했다. 화재가 발생한지 1년 만에 공장은 재가동될 수 있었다. 재건설한 공장은 한층 현대화됐고 제품의 품질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설비들이 도입됐다. 화재가 외려 공장을 선진화시킨 셈이었다. 재기하는 과정에서 모든 임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뭉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김홍국 회장은 글로벌 식품기업을 꿈꾼다. 농식품 선진국을 보며 ‘왜 대한민국에서는 글로벌 식품기업이 나올 수 없는가?’ 안타까워한다. 김 회장은 “농업이 선진화되지 않은 선진국은 없다. 대한민국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농기업을 가져야 할 때이다.” 라며 글로벌 식품기업을 향한 포부를 다진다. 하림그룹은 크게 ·축산·도축가공·식품가공·유통판매·곡물유통·해운·사료 등 7개 영역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 먹는 것과 관련된 사업으로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꼭 필요한 사업들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의 대표 선호식품 중 하나인 삼계탕이 다음 달부터 중국 수출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에 하림 주가가 급등세다. 김홍국 회장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 꼭 손에 넣어야 한다던 동북아 시장이 하림에게 활짝 열려 있다. 우리도 농업 선진국이 되어 글로벌 식품 기업을 가질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그 길에 하림이 앞장서 주길 바란다.

 

하림 그룹은?

재계 서열 38위, 자산 9조 9100억원 규모의 회사다. 1차 농산물을 고부가가치 식품산업으로 체계화시킨 선도기업을 평가받는다. 닭과 오리의 생산, 가공, 유통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진출해 있으며 양돈분야의 계열화사업을 처음 도입 정착시켰고 브랜드 돈육시장을 개척했다. 생산단계의 경쟁력을 가공, 유통 분야까지 확대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애그리비즈니스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농축수산물로 특화된 홈쇼핑 채널(NS홈쇼핑)을 소유하고 있으며 곡물·사료 유통을 위해 팬오션 인수, 신선식품 온오프라인 통합 배송을 위해 파이시티(옛 양재화물터미널 부지)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식품종합그룹을 비전으로 하는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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