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추미애 더 민주 대표 개띠들의 전쟁, 최후의 킹메이커는?…. 가난했던 세탁소집 딸 추미애, 문재인호(號) 키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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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09.07 17:55 Updated

이슈인물/ 추미애 더 민주 대표    개띠들의 전쟁, 최후의 킹메이커는?…. 가난했던 세탁소집 딸 추미애, 문재인호(號) 키를 잡다

이슈인물/추미애 더 민주 대표

 

개띠들의 전쟁, 최후의 킹메이커는?

가난했던 세탁소집 딸 추미애, 문재인호(號) 키를 잡다

추미애 의원이 총 득표율 54.03%로 이종걸(23.89%) 후보와 김상곤(22.08%) 후보를 크게 누르고 대표에 올랐다. 민주당 61년 역사에서 대구·경북 출신으로 선출직 당대표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라는 의미부여가 뒤따랐다. 이날 함께 치러진 부문별 최고위원 선거도 친문 인사들이 독식하며 대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다. 도로 ‘친문당’이 됐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불과 20여일 전에 치러진 새누리당 경선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장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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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대에서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가 당선됐을 때도 80년 대 이후 보수정당에서 선출된 최초의 호남출신 대표라는 의미 부여들이 나왔다. 그리고 최고위원 6명 중 5명이 친박 인사로 채워지자 ‘도로 친박당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추미애 대표는 대구에서 태어나 초, 중, 고(경북여고)를 졸업한 전형적인 TK 출신이다. 대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그의 집안은 어느 날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세탁물을 몽땅 잃어버리면서 빈털터리가 됐다. 거기에 언니가 갑자기 눈병을 얻어 치료를 해야 했고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나면서 살림이 더욱 어려워지자 둘째 딸이었던 추 대표는 결국 세살 때 외가집으로 보내지게 된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도 한 번도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지 않았을 만큼 대가 강한 아이였다. 이런 기질은 학창시절에도 나타났는데,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와이로쟁이’라며 흉을 본 친구가 사정없이 따귀를 맞자, 책가방에 책을 넣고 그 즉시 교실을 나왔다. 반에서 1등이며 모범생이던 그의 행동에 모두들 놀랐다.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추미애식의 표현이었다. 강한 소신은 판사 재직 시에도 이어졌다. 춘천지방법원 판사이던 시절, ‘86년 건국대 점거농성 사태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소위 ‘불온서적 압수수색’의 영장신청 서류에 서명을 거부했다. ‘87년에는 시위 주동 혐의로 영장이 청구된 강원대생 3명 중 2명의 영장을 기각시키기도 했다. 추 대표는 DJ가 발탁한 영남출신 인물들 중 크게 성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0년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DJ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15대 국회 때 ‘여성으로서 지역구는 어려우니 전국구로 나가라’는 제의를 뿌리치고 지역구인 서울 광진구로 출마를 하여 당선된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는 수석부대변인직을 고사하고 경북에 내려가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었다. 이를 계기로 그에게 ‘추다르크’라는 별명이 만들어지게 된다.대학 동기동창인 전북정읍 출신의 서성환 변호사와 7년의 열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된 스토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한양대 법대 장학생으로 뽑혀, 전 학년 수업료 면제뿐만 아니라 기숙사 생활 및 생활비 지원까지 받게 된다. 대학시절 고시공부를 함께 하면서 사랑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추 대표가 ‘82년 합격하고 3년 뒤에 서 변호사가 합격한다. 서 변호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 20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살아났으나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한쪽 다리가 불편한 상태다. 호남출신과 불편한 다리 등을 이유로 추 대표의 집안에서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가 심했으나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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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와 이정현, 닮은꼴과 차이점

추미애 대표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로서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지만 닮은 점이 너무 많다. 우선 58년 개띠라는 연령대의 공통점이다. 58세는 정치적으로 가장 중심적인 활동을 할 시기로 다음의 큰 꿈을 꾸기에 가장 적당한 연령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두 사람 모두 별 볼일 없는 집안의 흙수저 출신으로 어려운 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지위에 이른 자수성가형이라는 공통점이다. 정치 입문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서로 지역기반과 정 반대인 정당을 택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실리만으로 따진다면 추 대표는 새누리당 또는 제3 정당을, 이 대표는 민주당이나 제3 정당을 택한 것이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적대적인 지역 출신으로서 최초로 당대표에 당선된 기록을 썼다는 점이다. 추 대표는 더민주당에 적대적인 TK 출신으로, 이 대표는 새누리당에 적대적인 호남 출신으로 당대표에 당선된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과거 김중권 대표가 TK 출신으로 당대표가 된 적이 있으나 이는 당시 대통령이던 DJ의 임명에 의해서고 경선을 통해 당선된 것은 추 대표가 최초다. 그러나 이들의 당선을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을 옹색하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모두 친문, 친박이라는 당의 주류 계파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당의 실질적인 주인인 문재인, 박근혜의 임명에 의한 당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대표로서 실질적인 자신의 정치를 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독자적인 힘으로 당선됐다면 이는 한국 정당의 질적인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을 것이다.

두 사람의 차이점도 있다. 이 대표가 정치입문 이후 최 말단에서 시작해 17계단을 거쳐 대표에 이른 반면 추 대표는 정치 입문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만큼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문 과정에서의 차이는 이후 두 사람의 정치활동에서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 대표는 친화력을 최대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는 반면, 추 대표는 친화력 부족을 약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이 대표가 소신이 없고 오로지 주군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추 대표는 반대로 지나치게 소신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추 대표의 강한 소신은 과거 열린우리당 분당 과정에서 민주당에 잔류, 2009년 환노위원장 시절 민주당의 당론을 무시하고 노동법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추 대표의 이런 강한 소신 때문에 친문 진영에서는 추 대표를 당대표로 밀어 주면서도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모 정치평론가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문계가 ‘도로문(도로 문재인당)’, ‘이래문(이래도 문재인당, 저래도 문재인당)’ 등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최고위원을 친문 일색으로 선출한 배경에는 추 대표에 대한 불안감을 견제해야 한다는 심리가 일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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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성공한 킹메이커냐? 실패한 관리자냐?

이번 더민주당 경선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당내 비주류가 대부분 ‘국민의당’으로 이전하면서 기반이 거의 와해됐다는 점과 새로 가입한 10만 모바일 당원이 향후 당내 경선에서 위력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점이다. 이는 추 대표에게 안정적인 당 운영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대표 체제하에서 추 대표 본인부터 끊임없이 제기했던 정체성 시비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당대표 당선 이후 추 대표의 행보에서도 일정부분 감지된다. 추 대표는 당선 전까지 자신이 그렇게 비판했던 김종인 전대표의 사드배치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당 대표가 되자마자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 추 대표가 가장 앞장서서 비판했던 더민주당 강령에서의 ‘노동’ 문구 삭제 시비 같은 사례도 추 대표 체제하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들을 강도 있게 비판할 당내 반대 세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향후 문 후보와 추 대표는 역할 분담을 통해 호흡을 맞춰갈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당 운영에는 한발 물러선 상태에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주력하면서 대권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당 운영에 대해서는 추 대표가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며, 추 대표가 어려워진 상황에 쳐하면 문 후보가 일정부분 힘을 실어 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더민주당의 친문 일색화는 추 대표에게 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추 대표의 임기 중 지상(至上)과제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본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본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의 외연확대가 중요한데 친문 일색화는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문 후보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 들어올 외부 인사나 세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제3당 후보의 대선 출마는 이미 상수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야권 단일화가 대선 국면의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것인데, 더민주당의 친문 일색화는 제3당 후보의 단일화 거부 명분을 제공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이와 관련 문 후보나 추 대표는 3자구도 하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문 일색화’의 보다 더 중요한 문제점은 추미애의 실패가 곧 문재인의 실패로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과거 비주류가 영향력이 있을 때는 당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해도 주류-비주류(친노-비노) 간의 계파싸움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렵게 됐다. 추 대표의 당 운영 실패는 바로 주류인 친문 세력의 실패이며 연대보증을 선 문 후보도 책임을 함께 져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문 후보는 일정부분 추 대표와 분리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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