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최순실 게이트…. 신령(神令)통치 최순실, 대한민국을 조롱하다. 반복되는 역사, 10월 26일은 이토오, 박정희 저격, ‘박근혜 실권(失權)’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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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6.11.03 14:41

■정치/최순실 게이트…. 신령(神令)통치    최순실,  대한민국을 조롱하다.   반복되는 역사, 10월 26일은 이토오, 박정희 저격, ‘박근혜 실권(失權)’의 날

정치/최순실 게이트

 신령(神令)통치    최순실,  대한민국을 조롱하다

 반복되는 역사, 10월 26일은 이토오, 박정희 저격, ‘박근혜 실권(失權)’의 날

10월 26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날이다. 1909년 10월26일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는 의병운동이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1979년 10월 26일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민주화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2016년 10월26일, ‘최순실 게이트’ 조사를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결정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장영환 기자

 

그러나 과거 두 번의 10.26 사건은 더 큰 반동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1909년 이등방문 저격 이듬해에 한일합방이 이루어 졌다. 또 ‘79년의 박정희 저격 이후 전두환 군부라는 더 큰 독재 세력이 등장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획을 긋는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갈 사회적 준비가 부족하다면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는 사실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전히 과거의 낡은 시스템이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한 사회학자는 “이번 사태는 개헌론과 맞물리면서 우리사회의 근본적 개혁에 대한 열망들이 분출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제도화 시키지 못한다면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 한 정치학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워져 있던 박정희 신화가 상당부분 깨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현재 한국정치는 여건 야건 특정인의 후광에 힘입은 극단적인 세력들이 기득권화 돼 있다. 이를 타파해 내지 못하면 한국정치는 발전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20년 전 국정농단 재현, 재2의 국가위기 사태 우려

김현철씨의 국정농단 사태를 경험한지 불과 20년 만에 대한민국은 최순실이라는 한 무녀(?)의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아무런 공직을 맡은 바 없는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말씀자료 등을 미리 받아본 것은 물론, ‘일본특사단 면담 시나리오’ 같은 민감한 외교 문건도 접견 9시간 전에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최순실 사태를 바라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20년 전의 ‘김현철 게이트’와 너무나 흡사한 것에 놀라고 있다. ‘92년 김현철씨는 대선을 앞두고 나라사랑운동본부(나사본)라는 외곽조직을 만들었다. 김씨의 30년 친구인 박태중이 조직 가동에 돈을 댔다. 김씨는 쓰고 남은 대선 잔금을 관리하며 ‘나사본’외에도 막후 비선조직인 동숭동팀(전병민)과 언론-정책 모임으로 광화문팀(김원용 교수)을 운영했다. 김씨는 문민정부 출범 후에도 별다른 공식 직책이 없이 ‘중앙여론조사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했다. 거산인 YS의 아호를 따서 소산으로 불릴 만큼 소통령 역할을 했다. 아버지가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사정을 지휘할 때, 아들은 기업으로부터 ‘활동비’를 받아 강남의 고급 룸살롱 ‘지안’에서 측근들과 어울리며 국정을 농단했다. 시간이 갈수록 김씨와 선을 대려는 정치꾼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고, 그의 책상에는 이력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김씨는 안기부의 ‘대통령 일일보고’를 오정소 대공정책실장과 김기섭 기조실장 라인을 통해 대통령보다 먼저 봤다. 정권 말기 현철씨 이름이 각종 비리사건에 오르내리더니, 1997년 한보그룹이 부도나면서 ‘한보 게이트’가 불거졌다. 김씨는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아들의 전횡을 막지 못한 대통령은 참담한 표정으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이후 김 대통령은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아들과 그가 이끈 사조직이 해체되자 국정운영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 IMF 환란을 맞게 됐다. ‘김현철 게이트’ 직전까지도 YS는 국민들에게 오만방자한 자세를 보였다. ‘97년 신년사에서도 “차기 대통령은 내가 결정한다”는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2016년 4.13 총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하지 못한 박 대통령의 태도와 너무 흡사했다. 그러나 ’97년 1월 초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성난 민심은 ‘한보 게이트’를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결국 YS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식물대통령이 됐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폭발한 민심은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이미 박 대통령은 통치력을 상실했다. 그동안 권력의 키 역할을 했던 ‘최순실 사단’이 붕괴되면서 박 대통령도 맨붕(맨탈붕괴) 상태에 빠져들었다. ‘97년과 같은 환란사태를 막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단체 등에서는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뇌관은 ‘우병우 게이트’로 시작

‘최순실 게이트’의 폭발은 ‘우병우 게이트’가 뇌관 작용을 했다. 박 대통령이 우병우라는 뇌관을 제거하지 못하면서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비화되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여권의 모 인사는 “박대통령이 우병우를 정리하지 못한 이유가 우가 최-박의 관계를 너무 깊숙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우병우를 민정수석에 추천한 과정에도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질적으로 우병우는 최씨와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 수석을 민정비서관으로 추천한 법조계 유력 인사가 최씨 제부인 서모씨와 친분이 있어 우 수석을 최씨에게 추천했다는 것이다.

‘우병우 게이트’는 진경준 전 검사장이 100억원대의 넥슨 ‘공짜주식’을 받아 구속된 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 조선일보는 “진 검사장이 처가와 넥슨과의 부동산 거래를 주선해준 대가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사장 인사 검증에서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눈감아줬다”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조선일보를 향해 ‘부패기득권 세력’이라고 맞불을 놨다.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의 기싸움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기업들에게 K-스포츠와 미르재단에 상납금을 내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기사를 냈다. 이에 청와대는 김진태 의원을 통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사장에게 특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조선일보는 송희영 주필이 사임하면서 한발 물러서 듯 했으나, 한겨레가 조선일보에 이어 “K-스포츠와 미르재단의 중심에 최순실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이 올랐다. 그리고 JTBC가 최순실이 떠난 사무실 건물에 남아있던 태블릿PC에서 박 대통령 연설문과 국무회의 말씀자료, 회의자료, 취임식 행사자료 등 파일 200개를 입수, 지난 10월 24일 ‘최순실 파일’을 특종 보도하면서 ‘최순실 게이트’는 폭발했다. 결국 다음날인 10월25일 박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개헌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 지 불과 하루만이다. 이를 계기로 박근혜-최순실 관련 수많은 새로운 의혹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껍질과도 같다. 국민들은 매일 생중계되는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한편으론 즐거워하면서도, 이것이 드라마가 아닌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다.

 

박근혜의 흑역사 사실로 드러나, 국민들은 구토 직전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 되면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근혜의 40년 흑역사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는 40년 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 출신으로 일제시대 경찰업무를 하다 해방 이후 승려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70년대 초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한 ‘영생교’를 세우고 교주가 됐으며, 부인 6명으로부터 3남6녀를 두었는데 최순실은 5녀다.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3번의 편지를 보낸 결과, 1975년 3월6일 박근혜가 최태민을 청와대로 부르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됐다. 이후 최는 영생교 간판을 내린 뒤 ‘대한구국선교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을 만들었다가 이를 통합해 ‘새마음봉사단’을 만들고 박근혜를 총재로 추대했다. 이 단체를 통해 박근혜와 최태민은 ‘새마음갖기운동’이라는 전국민 정신개조운동을 펼쳤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보충서’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렀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직보 했지만 묵살당한 일이 10·26 사건의 중요한 동기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83년 1월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맹아가 싹텄다. 최태민이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하면서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오르내렸으며, 최순실도 박근혜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전횡을 일삼아 문제가 됐다. ‘94년 최태민이 사망한 이후, ‘95년 정윤회가 최순실과 결혼하면서 새롭게 등장했다. 정윤회는 ‘98년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의 입법보조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박근혜가 2002년 미래연합을 창당할 때는 박근혜총재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정윤회는 ‘문고리 3인방’으로 통하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추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정두언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실체가 알려지면 국민들은 구토를 할 것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숨겨놓은 자식 얘기도 시중에 회자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박근혜 관련 온갖 비리와 추문들이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미 국민들은 멀미를 넘어, 정 의원의 주장처럼 구토 직전까지 와있다.

 

권력1위 최순실의 신령통치, ‘대통령 하야’ 주장 나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청와대 인사개입, 대통령 주요 보고자료 사전 입수 및 손질 등을 비롯해 온갖 크고 작은 비리에 관여돼 있다. 딸 정유라를 승마특기생으로 만들기 위해 승마협회에 압력을 넣는가 하면 문체부 인사에까지 관여했다. 딸의 이대 부정입학을 주도하면서 결국 이대 총장이 사퇴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석이 잦고 과제를 내지 않은 딸 정유라에 제적 경고를 한 이대 지도교수에게 폭언은 물론 사퇴에 이르게 했다. 대통령의 일정표를 미리 보면서 대통령 의상을 결정하는가 하면,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대통령 주요 측근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2016년 1월 ‘제2회 병신년 합동 국운 발표회’라는 이름의 굿을 국회에서 진행한 것도 최순실과 연결 짓는 시각이 많다. 이날 행사에는 역술인과 도인, 무속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최태민이 과거 영생교를 만들었던 만큼 최순실은 무속인과도 관계가 깊다. 행사 주최 측은 “국회 내부 규정상 음식물 반입이 금지돼 있어 굿은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이다. 최순실은 이 재단 설립 이전인 2015년 7월 독일에 ‘비덱 스포츠’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최씨가 만든 비밀회사는 1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재단은 “한류 확산을 통한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목표로 2015년 10월27일 설립됐다. 설립과 함께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16개 그룹으로부터 486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기금을 모금했다. 재단 설립 당시 문체부 공무원이 출장까지 가면서 재단 설립을 도왔으며,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경련에 지시해 기업들로부터 돈을 모았다. 또 2016년 1월13일에는 “창조 문화와 경제에 기여하는 스포츠 문화의 토대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K스포츠재단이 설립됐다. 미르재단과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들로부터 6일 만에 380억원을 모아 화제가 됐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관련, 고려 공민왕 때의 신돈이나, 러시아 짜르 말기의 라스푸틴에 비유하는 주장이 새누리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과거 봉건시대에나 가능했던 신령(神令) 통치가 최첨단 시대를 바라보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진행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확대될 가능성도 보인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특검은 최순실과 일파를 조사함과 동시에 대통령도 조사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관저에 재벌 회장을 불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면서 ‘협조해 달라.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는 생생한 증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박대통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취지가 훌륭해 자신이 직접 지시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10월26일을 시작으로 대학가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대학에 이어 60여개 시민사회단체도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자격을 잃었다”며 대통령 퇴진 촉구. 내각 총사퇴와 각계각층을 아우른 ‘비상시국회의’ 결성을 제안했다. 이날 새누리당도 긴급 의원총회에서 야당들이 요구한 ‘최순실 특별검사’ 도입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10월27일에는 정당들 중 처음으로 정의당이 ‘박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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