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송균 재경완도군향우회장 … 완도의 미래, 어업과 농축산업의 균형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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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4.03 15:01

■인터뷰/ 정송균 재경완도군향우회장 … 완도의 미래, 어업과 농축산업의 균형에 맞춰야

인터뷰/ 

정송균 재경완도군향우회장

완도의 미래, 어업과 농축산업의 균형에 맞춰야

 

가난이 싫어서 중학교만 마치고 완도 섬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청소년이 있었다. 청소년은 정직하자는 일념으로 세상과 맞섰고 갖은 노력 끝에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현재 재경완도군향우회를 이끌고 있는 정송균 회장이다. 정 회장은 이제는 떠나는 섬이 아니라 찾아가는 섬 완도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오는 4월 개최되는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홍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지태 기자

고향 완도가 잘 살고 행복한 군이 되길 바라는 일념

정송균 회장은 2017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운영조직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조직위에서는 전 향우회원이 참가해 지난 2월부터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4개의 팀을 조직해 팀별로 입장권, 홍보물품, 포스터, 현수막 등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박람회를 알리고 있다. 지난 2014년 박람회에는 세월호참사라는 최악의 재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6만여명이 완도를 다녀갔다. 정 회장은 올해는 60만명 이상이 완도를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박람회도 큰 성공을 거두리라 확신하고 있다.

“해양강국이라고 하는 영국이나 일본에서도 못하고 있는 국제해조류박람회를 우리 완도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더욱 풍성한 볼거리와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관람객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미래식품인 해조류의 가치가 더욱 알려지고 완도가 국제적으로 해조류의 메카로 떠오르기를 기대합니다.”

재경완도군향우회에서는 이번 해조류박람회 홍보를 위해 기부 등을 통해 1억여원의 예산을 마련해 5천여장의 입장권과 김 등 특산품을 구입해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3월 21일 시점에서 완도에 갈 사람들이 7천여명 이상 모였고, 45인승 버스 76대가 예약됐다. 정 회장은 대회 즈음해서 최소 90대 이상의 버스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향우회장의 솔선수범에 의해 모든 회원들이 의기투합해 홍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결과다. 향우회장이 고향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 회장은 유독 향우회 일에 열정적이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왜 그렇게 열정적이냐고 누군가 물으면 정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고향 완도가 잘 살고 정말 행복한 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에요. 우리 시대에는 너무 가난해서 섬을 떠났고 인구도 줄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그러려면 완도가 잘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향우회에서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땅의 중요성에 관심 가져야

고향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정 회장은 완도에서 너무 바다에만 의존하며 땅을 가꾸지 않는 현상을 우려하며 이제는 땅을 소중하게 여길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완도하면 전복일 정도로 전복이 유명하지만 전복사업은 한계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는 큰 이익이 없을 겁니다. 완도의 맑은 해변가에서 시금치, 봄동 등을 재배하며 땅도 살리고 수확도 올려야 합니다. 군외면과 신지면에서만 나는 비파같은 특작물도 더욱 육성해야 하고요 축산업도 더 키워야 합니다. 단 예전같은 소농으로는 안되고 지역별로 대단위 기계화 단지를 가꾸어 농축산업을 유도해야 합니다. 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완도군의 어업과 농축산업 비율은 6:4 정도가 되는 게 적당하다고 정 회장은 말한다. 균형있는 발전이야말로 완도군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전복 혹은 다시마가 소득이 좋다고 모두가 몰리면 그 고소득의 평균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공급과잉 혹은 소비 축소가일어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정 회장의 지적은 완도군 뿐만아니라 고소득을 바라고 특정상품에만 쏠리는 다른 지자체들도 되새기고 신중히 고려해 볼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단신으로 상경해 재경완도향우회를 전국 최고수준으로 키우기까지

그 스스로가 가난이 너무 싫어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잘사는 고향 완도를 이루겠다는 정 회장의 꿈은 매우 절실하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정 회장은 매사에 정직하고 열심히 하자는 신념으로 벌면서 공부했다. 중장비를 다루는 공병으로 군 생활을 했는데 군에서도 책임감있는 자세로 성실히 근무했다. 경남 함안으로 대민지원을 갔는데 함안군수로부터 감사패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 사실을 안 대대장이 현대건설을 추천해 줘서 제대 후 현대건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중동 붐이 일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중동취업을 자원해 사우디로 향했다. 6년을 목표로 하고 떠났는데 형님이 사업에 실패한 것을 알고 4년 3개월 만에 돌아왔다. 당시 20대였다고 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1년을 못 버티고 귀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4년 이상 근무하면서 매년 우수사원으로 뽑히자 주변사람들에게 독종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사업에 실패한 형님의 빛을 갚고 남은 돈으로 부천 중동에서 땅을 빌려 농장을 짓고 닭과 돼지를 키웠다. 그러나 경험부족으로 쫄딱 망하고 말았다. 결혼식할 돈도 없어서 개척교회에서 친지들만 모시고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빈털터리였지만 “가족이 있고 육신이 건강한 게 어디냐”고 마음 먹고 안양의 유치원 등에 집기들을 조달해 주는 업체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자는 신념은 여전했다. 그런 모습을 본 사장이 직접 사업을 운영해 보라며 1억원을 조건없이 지원해줬다. 꽤 부리지 않고 진심으로 일 하는 걸 보고 당시 1억원이라는 큰 돈을 준 것인데 그에 자신감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해서 3년이 채 안 걸려 그 돈을 갚을 수 있었다. 이후 사업을 운영하면서 정상궤도에 올리고 부모님도 모셔왔고 현재는 안양에서 사우나를 운영하고 있다. 향우회와의 인연은 90년대 말 완도금일읍향우회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조직도 재정도 열악했던 금일읍향우회를 10년여 동안 맡으면서 1천 5백여명의 조직으로 키웠다. 2007년 재경완도군향우회로부터 사무총장으로 오라는 콜이 왔다. 완도군향우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조직개편과 강화에 힘을 쏟아 3년 후에 부회장이 됐고 4년 후에 회장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회장을 맡은 4년 전 완도군향우회 회원이 4천여명이었는데 현재는 향우회 모임에 8천명에서 1만여명까지 모이는 큰 조직으로 키웠다. 인원이 많다보니 매년 가을 향우회 전체가 모일 때는 잠실 보조경기장을 이용한다. 완도향우회를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최고의 향우회로 키워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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