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유리천장 깬 여성들 … 임영신부터 강경화까지 유리천장 돌파한 여성들 ‘꽃길 혹은 가시밭길’…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여성비율은 역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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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ent 2017.07.01 17:54 Updated

■화제/ 유리천장 깬 여성들  …  임영신부터 강경화까지 유리천장 돌파한 여성들  ‘꽃길 혹은 가시밭길’…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여성비율은 역대 최고

화제/ 유리천장 깬 여성들

임영신부터 강경화까지 유리천장 돌파한 여성들

‘꽃길 혹은 가시밭길’…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여성비율은 역대 최고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지난달 26일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5개 정당 가운데 3개 정당의 지도부가 여성으로 채워지는 ‘여인천하’구도가 형성됐다. 장관직 여성 비율 30%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리천장’깨기에 발맞추어 정치권도 여성 지도자에 당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지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 4명의 여성을 초대 내각 구성원으로 지명(17개 부처 중 보건복지부와 산업부 장관 후보자 미 지명)했다. 앞서 여군 헬기조종사 출신인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했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국가보훈처가 장관급 기구로 될 것임을 감안하면 내각 구성원 중 여성장관(급) 비율(18개 부처 중 5명)이 28%로 사실상 공약을 이행하는 셈이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여성 장관 비율 30%’를 공약으로 내 걸은 바 있다. 역대 정부에서 여성 각료는 드물었다. 지금까지 역대 여성장관(문재인 정부 후보자 포함)은 모두 46명이다. 이들중 역대 정권 1기 내각 여성장관 수는 이승만 대통령 때 1명, 노태우 대통령 때 1명,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 각각 3명, 이명박 대통령 때 1명, 박근혜 대통령 때 2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4명을 지명했기에 역대 1기 내각 최다 여성장관 장관 기록을 새로 세웠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유리천장을 뚫은 주요 인사들을 정리한다.

 

임영신

▲임영신, 첫 여성 장관이자 첫 국회의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관은 임영신(1899년~1977년·사진)씨이다. 임 전 장관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초대 내각 때 상공부를 맡았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극히 제한적이던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던 대사건이었다. 그는 또 첫 여성 국회의원으로도 유명하다. 48년 제헌국회 출범엔 참여하지 못했으나 이듬해 1월13일 경북 안동을 지구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에 따르면 임 전 장관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임 전 장관은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사우스캘리포니아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26년 석사학위를 마친 뒤 이 전 대통령이 불러 워싱턴에서 그를 도왔다. 당시 유부남이던 이 전 대통령이 호감을 느껴 청혼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임 전 장관은 이승만의 ‘승'(承)을 따 자신의 호를 ‘승당'(承堂)으로 지었다. 광복 후에는 이 전 대통령을 따라 우익계 여성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장관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공금 유용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태영

▲이태영, 첫 여성 사법고시 합격· 첫 여성 변호사

이태영(1914년~98년)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법조인이며 인권 및 여권 운동가이다. 1931년 평양 정의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9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1952년 제2회 고등고시에 최초의 여성합격자가 되었고, 이어서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 첫 판사라는 기록도 세울 뻔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임용을 거부, 하는 수 없이 첫 여성 변호사로 방향을 틀었다. 첫 여성 판사의 자리는 2년 후 황윤석씨에게 물려줘야 했다. 1952년부터 각종 청원서와 진정서를 통해 가족법개정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56년 여성법률상담소(현재 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를 창설하여 가족법개정운동을 주도하였다. 1977년 이른바 명동3·1사건으로 실형을 받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였으나, 1980년 복권되었다. 19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 및 여권신장에 미친 공헌으로 1971년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 1975년 막사이사이상, 1982년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1984년 국제변호사회 국제법률봉사상, 1989년 브레넌인권상을 수상했고, 국내에서는 199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박순천

▲박순천 첫 여성 당수

박순천(1898년~1983년)씨는 기녀(妓女)로 가장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동경 요시오카여자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갔으나 3·1운동 당시의 보안법 위반혐의로 다시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어 마산감옥에서 1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출옥 후 다시 일본에 유학, 1926년 니혼여자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하고 귀국, 남편과 함께 경상북도 고령 촌가에 살며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39년 서울에 올라와 조선공예주식회사 금강전구공장 여공감(女工監)으로 근로현장에 있기도 하였다. 8·15광복 직후 건국부녀동맹을 조직,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에 불복하는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1947년부터는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하여 2·4·5·6·7대 국회의원과 첫 여성 당수 기록을 세운 한국 정치사의 거물로 성장했다. 3공화국 때 민주당 총재를 거쳐 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 당수를 지낸 그는 1972년 유신체제 출범 후 친정부 행보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고, 살아생전 독립운동가로 추앙받았으나 일제 말기인 1943년 3월 정신대를 종용한 사실 등 친일 행적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명숙

▲한명숙, 첫 여성 국무총리

한명숙(韓明淑, 1944년 3월 24일 ~ )씨는 1967년 2월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신학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1977년 한국신학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1985년 2월 여성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미국에 유학, 1999년 8월에는 미국 뉴욕유니온 신학대학교 객원연구원 자격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한명숙씨는 김대중 집권 이후 16대 국회 비례대표로 정계 입문 했고, 여성부 초대장관을 역임했고, 참여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4월20일부터 2007년 3월7일까지 37대 국무총리에 올라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오세훈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했다. 2012년 1월 16일 민주통합당 초대 대표에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나, 2012년 총선에 공천 실패로 사퇴했다. 그는 2007년 3~8월 세 차례에 걸쳐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5년 8월 징역 2년 판결을 받고 경기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추미애

▲추미애 첫 여성 여당 당수, 역대 여성 지역구 최다선 국회의원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둘째 딸로 태어났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광주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권유를 받고 정계에 입문,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으로 시작해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박순천, 박근혜, 이미경에 이어 대한민국 역대 여성 최다선(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구로만 따지면 대한민국 역대 여성 지역구 최다선 국회의원이다. 2016년 8월 27일 열린 전당대회 선거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전대미문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비롯된 조기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서 더불어 민주당은 10여년만에 정권을 되찾으며 집권당이 되었고, 추미애 본인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집권당의 여성 당대표가 되었다.

 

전효숙

▲전효숙 첫 여성 헌법재판관

전효숙씨는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의 여성 법조인으로, 2003년 8월부터 2006년 9월까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을 지냈다. 이로써 사상 첫 최고위 여성 법관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어 2006년 노무현에 의해 여성 최초로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되었으나, 야당이 제기한 헌법 및 관련 법규에 관한 논란 가운데 지명이 철회되었다. 현재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영란

▲김영란 첫 여성 대법관, 조배숙 임경숙 첫 여성검사

김영란씨는 서울대 재학시절인 1978년 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민사지방법원을 시작으로 1991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3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1998년 수원지방법원 판사가 됐다. 이후 1999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2001년 서울지방법원 판사, 2003년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다가 2004년 사상 첫 여성 대법관에 올랐다. 이후 국민권익위원장(3대)을 거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사상 첫 여성 부장판사(차관급)는 지난 1995년 대전고법 부장판사에 오른 이영애씨가 그 주인공이다. 앞서 1982년 조배숙, 임숙경(이상 사시 22회)씨는 나란히 검사로 임용, 사상 첫 여성 검사가 됐다. 후배인 조희진 의정부 지검장은 사상 첫 법무부 과장(1998년), 첫 여성 부장검사(2004년), 첫 여성 지청장(2010년) 타이틀을 안았다.

 

강금실

▲강금실 첫 여성 법무부 장관

2003년 참여정부에서 제55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개혁적인 업무 추진과 발랄한 언사로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또 꼭짓점 댄스를 잘 춰 ‘강효리’라는 별명을 얻는 등 연예인이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측의 출마 권유가 있었으나 물리치고 장관직을 계속 수행했다. 법무부 장관 사직 후 다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6년 제4회 지방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서울 시장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의 오세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3월 통합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막후 지원한 뒤 당직을 맡지 않고 있다. 현재는 법무법인 ‘원’의 고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양승숙

▲양승숙, 첫 여성 장군

양승숙(梁承淑, 1950년 3월 21일 ~ )은 충남 논산에서 출생으로 대전 호수돈여고와 전남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에 간호후보 29기로 임관했고 간호장교로 근무했다. 2002년 1월 정식으로 준장 계급장을 달은 뒤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을 지냈다. 비전투 병과이지만 양 준장의 장성 진급은 유리천장을 깬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육군 예비역 준장 신분으로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대령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당시 간호사관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했지만 그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결국 2001년 5월 31일에 간호사관학교 존치 결정이 난 일화가 유명하다.

 

피우진

▲ 피우진, 첫 여성 보훈처장·첫 여성 헬기 조종사

교사로 근무하다가 1979년 소위로 임관해 특전사 중대장을 지냈고, 이후 육군 항공병과로 자원해 1981년 헬기 조종사가 됐다. 육군항공학교 회전익 14기인 그녀는 여군 1호 헬기 조종사인 김복선 예비역 대위보다 7개월 늦은 1981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비행교육을 받았다. 육군 205 항공대대 헬기 조종사를 지내며 남성 군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스스로 힘으로 여성이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피우진(사진) 전 육군 중령을 보훈처장으로 임명했다. 지금까지 보훈처는 군단장급 이상의 직위를 역임한 예비역 고위 장성이 가는 자리로 여겨졌으나 이번 조치로 금녀의 벽이 무너짐과 함께 장군 독점 기록마저 깨졌다. 피 보훈처장은 여성 첫 헬기 조종사로도 유명하다.

 

김옥선

▲김옥선, 첫 여성 대통령선거 후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의 꿈 중 하나이다. 여성 중 대통령 후보로 끝까지 완주한 이는 1992년 12월 14대 대선 때의 김옥선씨이다. 3선(7·9·12대) 의원 출신인 김 전 의원은 1975년 10월8일 국회 질의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공격해 이름을 알렸다. 남장 여성 정치인으로 유명한 김 전 의원은 무소속으로 나와 8만6292표를 획득, 7명의 대선 후보 중 6위에 머물렀다. 이후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에 3차례 도전했으나 낙선 또는 사퇴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사기죄로 실형을 사는 등 순탄치 않은 노년을 보내고 있다.

 

박근혜

▲박근혜, 첫 정당 여성 대통령 후보·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상 첫 주요정당 여성 대통령 후보와 첫 여성 대통령이다. 18대 대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득표율 51.55%(1577만3128표)를 얻어 아버지에 이어 부녀 대통령이 됐으나 최초로 탄핵을 당해 파면되는 불명예 기록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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