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홍미식의 개봉산 기행 … 개봉산이 주는 아주 특별한 삶과 인생

president
By president 2017.08.01 15:20

■ 에세이/ 홍미식의 개봉산 기행  … 개봉산이 주는 아주 특별한 삶과 인생

에세이/ 홍미식의 개봉산 기행

개봉산이 주는 아주 특별한 삶과 인생

홍미식

 

길고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농민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비가 한 번 내리기 시작하자 며칠째 소나기처럼 집중적으로 휙 몰아쳤다가 쨍했다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날씨이다. 오늘 새벽에도 비가 오락가락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접이식 우산을 챙겨 개봉산을 향해 집을 나선다. 조선시대에 이 산에서 봉화를 올렸다 하여 봉화대(烽火臺)라고도 부르며, 3·1운동 때도 마을 주민들이 이 산에서 봉화를 올리며 일제에 항거하였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산 기슭에서 온천수보다 온도가 조금 낮은 온수가 나와 일본인이 오류장(梧柳莊)이라는 요정을 지었는데, 오류장은 이광수(李光洙)의 소설 속에도 종종 언급되는 해발 125미터의 야트막한 산으로 구로구 개봉동과 오류동의 경계에 있다. 가족들은 이런 날 산에 가는 것을 말리지만 이른 아침 앞동산에 올라 운동하는 것이 습관이 된 나에겐 그걸 거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비 오는 날의 산은 맑은 날에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온몸으로 오롯이 비를 맞고 있는 나무들과 빗속에 뿌옇게 피어나는 물안개 낀 전경을 바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 내리는 날 산행의 매력에 푹 빠져버릴 것이다. 비도 오는데 우산을 쓰고 무슨 청승이냐는 사람도 있지만 비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눈 내리는 날은 눈이 내리는 대로 그 나름의 운치가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평소에는 마시지 않는 커피를 한 잔 준비한다. 일종의 날궂이인 셈인데 정상의 호젓한 정자에 앉아 흩뿌리는 비에 젖어 뿌연 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선물로 안겨준다. 비가 그치기라도 하면 마치 목욕이라도 한 듯이 깨끗하게 푸르러진 잎사귀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에 오르며 보니 개웅산도 작은 비 피해를 입었다. 산사태랄 것까지는 없지만 흙덩어리들이 떨어져 통행로를 막았다. 산 한 쪽에 흙덩이가 떨어져 나와 푹 파인 곳이 상처인 양 안쓰러워 눈으로 한 번 쓰다듬어 주고 큰 덩어리를 치운 후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매일 오르다보니 정이든 것일까 다정한 벗이 된지 오래이다.

산에 올라 체력단련장에서 여러 가지 운동 기구로 운동을 하고 내 나름의 운동인 맨손체조와 근력강화 운동을 한다. 날마다 산에 올라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긴 시간을 머물다보니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아도 참 많은 인생과 만난다. 운동을 시작하고 조금 있으면 60대 중후반의 부부를 만날 것이다. 손을 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기운동을 하는 부부를 만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뇌졸중으로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위하여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끌다시피 아내는 남편에게 의지하며 끌려가다시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앞산을 도는 부부를 보면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 어느 한 쪽, 남편이 귀찮아서 못 하겠다 하던지 아내가 도저히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하면 이렇게 이어지기 어려울 텐데, 부드럽고 평안한 표정으로 마음 맞춰 꾸준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부부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아프기 전 아내가 남편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베풀었을까? 부부간 신뢰가 얼마나 깊기에 저 쉽지 않은 과정을 얼굴 찌푸리지 않고 담담하게 되풀이할 수 있을까?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기원한다. 어서 아내의 걸음걸이가 좀 더 편안해지기를…

때로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달리기 선수를 만나기도 한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분은 전직 마라토너인지 가끔씩 기합을 넣어가며 언덕길을 달리고 또 달린다. 젊은이도 엄두를 내지 못한 비탈길 달리기를 크게 지쳐하는 기색도 없이 씩씩하게 해내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나이든 얼굴에 걸맞지 않는 근육질의 몸매에 달리는 생동감이 어우러져 부조화 속에서도 묘한 조화로움이 있다. 그 연세에도 열심히 달리는 어르신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인생은 죽을 때까지 관리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왜 요즘 한동안 안보이실까?

3년 전 난소암이 주변 장기로 전이되어 수술할 때 의사들조차 비관적이었다는 아주머니도 운동을 위해 열심히 산을 찾는다. 장시간의 수술과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처음엔 이 산 입구에 오는 겻조차 힘들었다는 이 분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걸음 걷고 쉬고를 반복하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거리를 늘리다보니 이제는 단숨에 정상에 올라 운동까지 할 수 있단다. 그 때를 회상하며 이만큼 건강을 회복한 것이 산에서 운동 하면서 몸과 마음이 치유된 덕분이라고, 이 산이 자신을 살렸다고 고마워한다. 아프기 전과 아프고 난 후 삶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달라졌다는 이 아주머니는 늘 ‘나에게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 날들이 이어져 세월이 될 테니 어찌 보면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그 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신의 가호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아픔을 산에 내려놓고 힘을 얻어가는 사람들

이제부터는 산책 겸 가벼운 운동과 이야기가 목적인 무리들이 들어선다. 70대 중반의 할머니는 십여 년 전 같이 산에 오던 열 명 남짓한 친구 중에 이제 본인만 남았다고 아쉬워한다. 누구는 무릎이 아파서 못 올라오고, 누구는 허리가 아파서 못 오고, 누구는 숨이 차서 못 오고 또 누구는 할아버지가 아파서 못 오고 이유도 가지가지다. 그래도 이 나이까지 산에 와서 운동할 수 있는 자신에 감사한다는 할머니의 말을 67세 아주머니가 이어 받는다, 젊어서는 남편이 술로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늙어서는 12년째 뇌졸중 후유증으로 누워있어 자신을 힘들게 한다며 이제는 자신도 늙어 남편을 간호하기 벅차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밉다기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란다. 엄마 힘들까봐 요양원에 모시자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간호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어 힘들어도 자청해서 돌보고 있다는 말을 듣다보면 부부란 젊어서는 사랑으로 살고, 나이 들면 정으로 살고 측은지심으로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운동을 하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저절로 들리다보니 본의 아니게 나는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여러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작은 산이 참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앞동산을 찾아 자신의 갖가지 아픔을 산에 내려놓고 힘을 얻어가는 사람들이 이리 많으니 지리산이나 규모가 큰 명산은 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을까? 인생 선배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 것인지, 앞으로 나의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며 나의 미래를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잠시 운동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인간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앉아서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운동 기구 하나만 해도 어떤 이는 반대로 돌아앉아서 하고, 어떤 이는 서서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어떤 이는 거꾸로 매달려보기도 한다. 같은 운동 기구를 놓고 다른 방법이나 자세로 자신의 체질이나 체격에 맞게 응용해서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할 때도 많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침체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 것이다. 아홉시엔 재능기부 선생님의 힘찬 구령에 맞춰 이십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아침체조로 체력을 다지고 있다. 일요일을 제외한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변함없이 체조를 하는데 선생님에게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이 대신 나서서 봉사를 하는 방식으로 하루도 중단 되는 경우가 없다. 일체의 외부 지원이나 관리 없이 이렇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체조단을 꾸려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오랜 기간 큰 잡음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맨손체조를 마무리한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오다 보면 작은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봄만 되면 산에 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내 집 정원처럼 가꾸는 할머니가 있다. 풀을 메고 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기도 하는 그 분의 거친 손이 있어 우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예쁜 꽃을 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 분이 애써 가꿔놓은 꽃을 망가뜨리는 별난 사람도 있다. 해마다 활짝 핀 꽃들이 장관을 이루는 이 꽃밭이 올해엔 워낙 가물었던 데다, 누군가가 막 피어나는 접시꽃의 목을 똑똑 꺾어 놓아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려 예년처럼 풍성하지 못했다. 아예 꺾어서 자기 집에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잔뜩 부러뜨려만 놓은 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지, 한 공간 안에 예쁜 손과 미운 손, 선과 악이 공존한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어 그랬는지 모르지만 꽃을 부러뜨린 사람도 내년에는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를, 그래서 내년에는 더 예쁘고 풍성한 꽃밭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성하의 계절에 흠뻑 내린 비로 한층 싱그러워진 나뭇잎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산 입구에 섰다. 산에서 내려오는 걸로 하루를 열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으나마 가까이에 앞동산이 있어 언제라도 편하게 오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 덕에 국민 약골이었던 내가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진 것 또한 감사하다. 이렇게 얻은 힘으로 나는 오늘도 하루를 힘차고 알차게 엮을 것이다.

나의 고마운 친구, 개웅산이여 영원 하라!

 

SHe is….홍미식
수필가이자 한국여성문예원 회원인 홍미식은 오마이뉴스와 구로뉴스에서 다년간 기자 생활을 한데
이어 검찰청 시민모니터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현대문학인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president
By president 2017.08.01 15:20
댓글작성

댓글없음

댓글없음!

이 기사에 관하여 첫번째로 관심을 표현해 주세요.

댓글작성
댓글보기

댓글작성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표시는 필수입력입니다.*

최근 글